술잔을 함께 기울일 친구가 없는 자의 변명

by 이주희

와인 모임을 하는 카페를 처음 가입한 지 벌써 십 년이 넘었다.

나도 지금 확인을 해보고서야 십 년이 넘었는지 알았다.

물론 가입하고 나서 실제로 모임을 나가기까지의 간격은 몇 년 있었지만, 생각보다 긴 시간이라 놀랍다.

그사이 열심히 모임을 나가던 때도 있었던 걸 고려하면

아직도 편하게 둘이서 와인 한 잔 할 친구가 없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어제 카페 글을 보다 보니 어떤 두 카페 회원이 어떻게 친해졌는지

저 멀리 인천으로까지 다른 회원 분의 가게를 찾아가 한 잔 한 글이 올라왔다.

부러웠다. 저 사람들은 여기서 만나 저렇게 먼 길도 같이 가는데 어째서 난 이럴까.


기본적으로 내게 '가까워진다'란 건

어렸을 적 부모님과 내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집에 계시던 어머니를.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타인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서 살기란 참 숨 막히고 힘든 일이었다. 어렸던 내가 그에 반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아니, 사실 아주 어렸을 때는 엄마의 마음이 곧 내 마음이었다. 나는 기꺼이 음식으로 영양분을 섭취하고 뇌를 사용해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기계가 되었다. 거기에 내 모든 인간적으로서의 옵션은 고려될 틈이 없었다.

아니, 우리 식구 중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조차도. 뭔가 잘못되었단 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그렇게 지낸 세월이 벌써 제법 지난 뒤였다.


그렇게 사람이면서 애써 기계처럼 살았던 게 너무 힘들어서, 누구든 가까워진다는 건 나의 원가족과의 관계처럼 될까 봐 까치발로 조심조심, 마음의 안테나를 세운다.

'너도 친해지면 널 좋아하는 내 마음을 이용해서 이래라저래라 하겠지.'

'너도 내가 너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필요하겠지.'

'넌 진짜 내가 아니라 내가 기계처럼 살며 쌓아올린 학력이나 다른 배경 때문에 내가 좋겠지.'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둘러싼 가장 가까운 곳에는

어떠한 관계도 없이 텅 비어있는 진공상태를 만들어 놓고

그게 편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문제는 나도 사람인지라

때로 외로움을 느끼고

어쩌다 우연히 가까워진 사람을

정말 귀히 여기지만 동시에

그 사람이 나를 제멋대로 지배하려 들까 봐

계속 주시하고 경계하게 된다는 점이다.

'월리를 찾아라'를 해보셨을지?

월리를 찾다 보면 여기저기에 다 월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 사람 사이의 관계 세팅이 이렇게 되어버린 나는

언제든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있고, 그래서

힘들게 마음에 들인 사람을 다시 내 마음 바깥으로 되돌릴 준비와 점검을 수시로 한다.

‘지금 내가 힘들다면 그 관계는 이어나갈 필요가 없다.’

이런 식으로.


사람 간의 간격을 중요시하는만큼

내가 한 발짝 더 다가가기를 주저할 때도 무척 많다. 그 편이 그 사람에게도 예의라고 생각되어서.

사람들이 다 나 같을 거란 생각은 착각인 걸 알면서도.


이상 와인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편하게 한 병 따서 나눠 마실만한 친구가 없는 자의 변명이었다.




뭐 계속 입맛에 맞는 모임에 격식을 차리고 나가 적당히 취해 돌아오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술이 있는 모임에서 '실수'만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라고도 볼 수 있으니까.

이런 내면의 기제를 알아챘다고 해서 방어적인 그 체제가 바뀔 것 같지도 않고.


다만 이제 그런 생각은 한다.

아무도 마음에 안 들일 거라고 해서 사람에 관심을 끄진 말자고. 주변 사람을,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두 눈을 뜨고 잘 좀 보라고. 너무 감에 의존하지 말고. 순간적인 기분에 좌지우지되지 말고.

왜냐면 그 수많은 사람 중 누군가,

어쩌면 진공을 뚫고 들어와도 무해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런 피곤한 가드를 좀 내려놓아도

상처받지 않을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희망, 그것 때문에.


그래도 역시 상상해보면, 누가 너무 가까이 들어오는 건 여전히 피곤할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관계의 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