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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r 13. 2022

티라미수 반쪽과 딸기 한 팩만큼의 마음

 소모임 활동을 하다 보면 허무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바로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말도 없이 모임을 탈퇴해 나갈 때다. 처음 모임에 나와서 내 차를 함께 타는 바람에 이혼 소송 중이라는 사실을 알렸던 모임장 언니도, ‘자꾸 누나한테 시선이 갈 만큼 누나는 진짜 이뻐요’라고 살랑살랑한 말을 건네던 동생도, 최근 아무런 언지 없이 모임을 나가버렸다.


 보통 모임을 탈퇴하는 이유는 애정사가 대부분이다. 그 안에서 누구를 만나다가 잘 안되어 둘 중 한 명이 나가게 되는 순서랄까.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언니에게 혼자 키우던 아이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이제야 다른 사람 입을 통해 들었다.

 “아이가 있었다고? 그런데 어떻게 주말마다 우리랑 놀러 다녀?”

 “친정에서 봐줬어. 중 2.”

 “중 2? 그렇게나 크다고? 남자? 여자?”

 “남자애.”

 “아니 근데 언니. 왜 말을 안 했대. 나는 처음부터 말했는데.”


 내가 이혼 중인 걸 털어놨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역시 내게 털어놓을 거란 기대는 하면 안 되는 걸까? 말없이 나간 언니가 걱정돼 따로 카톡으로 안부까지 물었었는데, 언니가 건넨 따뜻한 말과 여러 배려와는 별개로 마음속에 배신감이 살짝 눈을 치뜬다. 언니도 말을 했다면 우리는 더 친해질 수 있었을텐데.




 지난 가을쯤에는 우연히 또 다른 한 이혼한 여자분의 상담을 해드렸다.

 ‘아직 안 주무시는 분?’

 독서 모임 단톡방에서 도움을 요청하시길래 기꺼이 내가 응했다. 고민은 ‘돌싱글즈’라는 소모임이 새로 생겼는데, 소모임은 한 사람이 가입한 모임이 다른 사람에게 다 보이는 시스템이라 여기 가입하면 자신이 이혼한 줄 모르던 사람들도 다 알게 되어 고민이 된다고 했다.

 이혼 중인 내가 우연히 이런 상담을 하게 된 걸 신기하게 생각하며

 ‘참고로 저도 이혼소송 중입니다!’

 라는 말을 덧붙였다.

 여자분은

 ‘이혼이 죄가 아닌데 제가 다시 누굴 만나려니 참...

 눈치 보이고 제가 돌싱이라는 걸 말 안 하는데

 저렇게 표시가 되면 사람들이 알게되자나요.’

 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후 나는 어느 쪽이든 그분의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oo님 선택이지요. 가리고 싶으시면 탈퇴!

 그래도 들어가고 싶으시다면 유지!’

 돌이켜보면 참 이과생 같은 접근이었다. 나름대로는 따뜻하게 대할려고 노력했는데도.

 

 나와 상담 후에 그분은 당당히 그 모임이 보이는 걸 놔두겠다고 했다. 실제로 독서 모임 사람들이 그걸로 인해 그 분의 사정을 새로 알게되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 찾아보니 그 분 모임 중 ‘돌싱글즈’는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새 누구를 만났다 헤어지기라도 하셨을까.

 


 부지런히 주말마다 사람을 만나러 다니던 나도 결국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하루에 전화 한 두 통, 걱정해 주고 연락하는 사람은 대략 열 명 정도? 집에 있어도 하루종일 채팅을 하고 모임 내 글을 읽다보면 심심하지 않을 정도다.

 필요한 물건은 마켓컬리처럼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다 오는 시대라 사실 자가격리라고 해도 크게 불편한 점은 없다. 다만 예약해둔 도서 순번이 돌아왔는데 그 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못 가는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굳이 올 필요 없지만 그래도 집 앞에 뭐라도 하나 사다가 놓고 가는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누가 듣기라도 했는지 어제 저녁에 현실이 되었다. 집 앞에 케이크와 딸기, 그리고 덤으로 떨어져 가는 약까지 고마운 한 분이 오셔서 놓고 가셨다. 이쯤 되면 자가격리 생활 중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린 셈이었다.


 열다섯 살, 처음으로 남자아이가 밤을 새워 쓴 편지를 우리 집 우유통에 넣고 간 이후 여자의 미모는 권력과 같다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어제 받은 티라미수도 그 맥락에서 별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다.

 문제는 거기에 대한 나의 보답이다.

 기버(giver)와 테이커(taker) 중 절대 테이커가 되고 싶지 않은 나는 매쳐(matcher)에 가까운 사람이다. 때로는 큰 보답을 바라지 않고 주려고 노력은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고마운 선물을 받고 고민한다. 여기에 상응하는 보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는 자신이 기버라고 했지만, 받고만 앉아있기에 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리고 세상에 어떤 사람이 아무 조건 없이 누구 집 앞까지 약을 사서 놓고가나? 그런 건 없다.

 이렇게 무언가를 받고 나서 고맙기도 하지만, 이후에 그 사람과 어느 선에서 어느 정도로 지내야 할 지를 헤아리는 건 늘 어렵다. 잘못하면 오해가 생기기 때문에.



 이혼한 지 수년이 지나도록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말하기 어려워하는 그녀들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에 비하면 나는 뭐가 떳떳해서 학교 아닌 다른 곳에는 되도록 먼저 말하는가. 그녀들에게는 이 사회가 나의 학교처럼 이혼에 대해 따가운 눈총을 주는 것처럼 느껴질까?

 요즘은 이혼한 사람이 워낙 많고, 낙인을 찍는 것도 아닌데 그냥 혼자 지레 겁을 먹은 건 아닐까. 한 번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나를 아예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보는 것도 마음이 불편하던데.

 솔직함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게 아니라면 나는 늘 솔직하고 싶다.

 물론 이런 나도 학교에서는 되도록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학교는 너무나 보수적인 집단인데다 소문도 빠르기 때문에. 하지만 직장이 아닌 취미 생활과 친목의 영역에서는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이혼했다고 말해도 괜찮다고 그녀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다른 사람들  결혼할  같이 해봤던  굳이 가릴 일인지   모르겠어요. 누군가와 같이 살아보고, 힘들어보고, 헤어져보기까지   경험은 사실 돈주고도 사기 힘든 경험이고
 사람에 따라 가끔은  사람이 한없이 겸손해지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 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또 거꾸로,

 그렇게까지 새로운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하면 이혼 사실을 말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 스스로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그렇게나 큰 흠결로 바라본다면

 나 아닌 다른 누가 나를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을까.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같은 것 아닐까?

 나는 지금, 보험 처리 중이고 말이다.

 3년째 처리중인 이 사고가 제발 하루빨리 마무리 되길 바랄 뿐이다.

 세상의 모든 이혼한 분의 어깨가 조금이라도 펴지길. 그리고 자신을 너무 흠결 많은 사람으로 보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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