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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r 22. 2022

성과급의 계절

 교사에게도 성과급이라는 게 있다. 한 해의 실적을 S, A, B로 나누어 등급별로 1년에 한 번 받게 되어있다. 5월 정도에 지급이 될 때가 많았는데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 상황으로 내수 진작을 위해 3월에 지급한다고 했다.

 작년에 남편의 고소로 교육청 징계위를 다녀온 나는 내심

 '어쩌면 올해는 성과급이 없을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불문경고라 해도 내규상 성과급에서 제외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관련 조항을 찾아본 결과, 견책의 경우에는 학교 판단에 따라 줄 수도 있다고 되어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어쩌면 받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제 오후에 교감선생님으로부터 '곧 성과급 등급 문자를 보내겠다'는 전체 메시지를 받았다. 그날 오후에는 문자를 보내시겠구나 했는데 나에게는 퇴근 시간까지 문자가 오지 않았다. 혹시 이번에 제외가 된 건가 싶어 저녁 내내 마음을 다잡느라 애를 먹었다. 작년 실적을 적어낼 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던 건 그와 관련해 아무 채근도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막상 받을 때가 닥치니 그때 뭐라도 여쭤볼 걸 그랬나 싶은 마음과 그냥 잊어버리자는 두 가지 마음이 안에서 심하게 싸웠다.

 사실 지금 내 형편은 아이들에게 보내는 양육비가 모자라는 마당이라 한 푼이 아쉬운 게 사실이다. 4교시 교과 시간에 교무실 옆 회의실에 내려가 있으며 저기 바로 문 너머로 들려오는 교감 선생님 목소리에 마음이 콩닥거렸다.

 '가서 여쭤 봐, 말어?'

 엄청난 고민 끝에 결국 그냥 묻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찰나, 복도에서 우연히 교감선생님을 마주쳤다. 이제는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 그거? 아직 안 보냈어. 이따 오후에 보낼 거야."

 "아, 혹시 저만 못 받았나 해서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내 등급이 적힌 문자가 핸드폰으로 와 있었다. 나는 제외되지 않았다. 그 결과에 아마 학교와 교감선생님의 배려가 들어갔을 거라 짐작만 할 뿐, 차마 앞으로도 자세히는 여쭤보지 못할 것 같다. 




 오후에는 동학년 선생님 여섯 명이 다 함께 학급 청소용품을 사러 학교 근처 다이소를 갔다. 다이소를 가려면 시장을 지나쳐 가야 하는데, 양파 한 소쿠리에 천 원, 파 한 단에 천 원이라고 적힌 걸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이소에서 각자 필요한 청소용품을 넉넉히 담고 돌아와 한 교실에서 차를 함께 마셨다.


 선생님 중 한 분이 작년에 그만둔 원어민 선생님이 자의로 그만둔 건지 궁금해하셨다. 

 "그분이 그만두셨어요. 예전에 스키도 가르친 적이 있는데 이제 가르치는 건 싫다고 하시더라고요. 한국말 안 쓰는 회사 들어가서 프로그래밍하고 싶으시대요."

 이전 학교 동료 원어민 선생님이 새 원어민 선생님을 맞닥뜨리게 되면 말 걸어보라고, 원어민 교사는 외롭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래서 교과실에 그 선생님과 둘만 남았을 때를 틈타 영어로 인사를 나눴더니 마지막에는 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서 그런 사정도 알고 있었다.

 "그 선생님이 마지막에는 원어민 선생님이 말할 사람이 별로 없어서 외롭다고, 저보고 다음 원어민 선생님 잘 챙겨달라고 부탁하셨어요."

 "그런데 부장님은 그런 걸 어떻게 아세요?"

 "아, 실은 제가 영어 교과를 오래 해서..."

 그렇게 나는 영어 교과를 오래 한 얘기부터 시작해서 미국으로 파견 갔던 일과 연수 휴직하고 영어교육 석사를 딴 얘기를 하게 되었다.

 나도 오래 잊어버리고 있던 내 이야기였다.

 "와, 너무 좋으셨겠다. 저도 결혼하기 전에 그런 거나 할 걸. 뭐했나 몰라요."

 한참 둘째 키우느라 바쁜 막내 선생님이 말했다. 현재의 자유를 뺏긴 듯한 그 기분을 알았기에 어떤 마음에서 한 말인지 잘 알 것 같았다. 


 부장이라고 특별히 대접받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청소 물품을 사고 나서 막내 선생님께서 들어주려고 했지만, 내 건 그냥 내가 든다고 했다. 행정실에서 카드를 빌려준 선생님께는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나이가 가장 많은 작년 2학년 부장님은 알고 보니 둘째 따님이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었다. 그래서 작년에 정말 그만두고 싶으셨지만 그만두지 못하셨다고 한다. 했던 얘기를 또 하는 경향이 있으시긴 하지만 자꾸 듣다 보니 그분이 이해가 가서 좋은 면도 있는 것 같다.




 코로나에 걸린 이후 아직까지 목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목소리가 어색하고 목이 마르고 기침이 난다. 하지만 그런 증상보다 안타까운 게 바로 즐겨하는 와인을 오랫동안 입에 대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분 좋게 성과급이 나올 거라는 문자를 받은 기념으로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와인샵을 가 보았다. 특별히 비싼 건 아니지만 적당한 가격에 괜찮은 호주 쉬라즈 투핸즈 한 병을 샀다. 교사라는 직업은 특별한 소명 의식이 있을 때 더 매진할 수 있는 일임에 분명하지만, 우리 선생님들도 월급을 받고 일상을 꾸리는 생활인이다. 내가 학교에서 보람 있게 일한 돈으로 이 와인 한 병을 살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와인 이야기도 나눌 사람이 있어서 그 와인샵과 산 와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에는 추워서 계속 못했던 산책도 드디어 갔다. 밤에 수다를 떨며 같이 걸을 사람이 있다는 것도,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려준 올림픽 공원도 고마웠다. 지금 특별히 너무 사랑하는 한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의 페르소나는 날이 갈수록 따뜻하고 다정해져 간다. 그리고 내가 많은 이를 따뜻하고 다정하게 대할수록 돌아오는 다정함과 따뜻함도 크다. 새로 산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선생님 예뻐요.",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서 제일 키가 큰가? 아주 여성 여성해." 같은 소리를 여기저기서 듣는다. 멀리 있는 두 딸도 특별히 아프지 않고 잘 자라고 있다. 작년 제자들이 교실로 자주 찾아와 얼굴을 마주 보며, 부쩍 자란 키와 새 학년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란 걸 어쩌면 스스로가 제일 많이 깜빡깜빡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글쓰기 모임의 한 분은 이렇게 썼다.

 ... 나는 자신의 과거를 껌처럼 단물이 빠질 때까지 씹고 풍선까지 부는 사람을 혐오한다.

 그 글을 읽으며 어쩌면 내가 그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에서 쓰게 배운 점은 잊지 않아야겠지만, 놓아도 되는 부분은 보내주어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처음의 단맛을 생각하며 더 이상 아무 맛이 나지 않는 풍선껌을 미련하게 계속 씹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내게 일이 있어, 함께하는 동료가 있어, 내가 걸어온 길을 아는 이가 있어 살만하다. 맛있는 음식은 같이 먹자고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 함께 시간을 보내면 즐거운 사람이 있어 힘이 난다. 내 힘으로 돈을 벌어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어서 얼마나 뿌듯한지 모르겠다. 

 남은 날이 얼마든 이런 오늘이라면 무한히 반복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드디어, 길었던 겨울이 간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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