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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Apr 11. 2022

연애의 끝은 결혼일까?

 영주의 이별에 이어 최근 연애를 시작한 L도 남자 친구와 헤어질 위기에 처했다. 정확한 내막은 두 사람만 알고 있겠지만 나와 L, 그리고 그 남자 친구가 서로 만나게 된 원래 모임 자체를 L의 남자 친구가 돌연 탈퇴해버렸다. 당장 토요일에 장거리 당일치기 여행이 계획되어 있어서 모임에 비상이 걸렸다.


 서른아홉, 그리고 마흔. 여자에게는 마지노선 같은 숫자다.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이제 더 이상 아기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크게 느끼게 된다. 나는 서른이 넘자마자 이런 위기감을 느꼈고 그래서 결혼을 결심했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감정에 결혼과 아이라는 현실적인 요소가 개입되면 둘의 관계는 순항하기 힘든 걸까? 이즈음에 과연 ‘사랑의 마지막 도착점이 결혼인가?’하는 그 막연한 통념을 한 번 뜯어보고자 한다.




 만난 지 얼마 안 돼 L의 부모님을 뵈면서 엄청난 부담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대학생 때 네 살 많은 오빠를 사귀던 때가 기억났다. 그때 나는 스물셋, 오빠는 스물일곱이었고 그는 아직 방위산업체를 다니고 있었다.

 대학교 3학년 말 처음 만나 서로의 호감으로 데이트를 시작했고, 1년 반 가까이를 정말 사이좋게 잘 지냈다. 하지만 그사이 나는 임용고시를 보고, 사회인이 되었다. 처음으로 내 힘으로 돈을 벌게 되면서 그와의 미래가 어떨지 자주 그려보게 되었다. 즉 ‘그와 현실적으로 결혼이 가능한가?’를 따져보게 되었고 그에 대한 판단은 ‘No’에 가까웠다.

 자연히 나는 더 마음을 주기가 어려웠고, 달콤하던 연애는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 그간 쌓인 예쁜 추억들이 결국 결혼과 이어지지 못한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리고 이후 누군가 소개받을 때에는 이런 부분을 먼저 확인한 후, 확실하지 않으면 나가지 않으려 했다. 어차피 결혼하지도 못할 남자와 시간 낭비를 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고3 때 남자 친구와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종종 나누곤 했다. 우습게도 '나중에 아이를 낳으려면 건강해야 하니 전자파가 과하게 나오는 드라이기는 쓰지 않는 게 좋겠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은 일이 아직도 기억난다. 고작 열아홉 살 짜리가 그렇게 먼 미래를 내다 보다니. 이걸 풋풋하다고 해야할지 바보같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수능이 끝나고서는 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2세의 얼굴을 합성해보며

 "와, 아들 얼굴 좀 봐. 너 닮아서 진짜 잘생겼다."

 라는 오글오글한 말도 나눴다.

 힘들게 같이 수도권으로 대학을 간 후 새로운 환경에 너무 움츠려 든 그 애의 모습을 보며, 스무살의 나는 그가 앞으로 그렇게 잘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아이의 학교가 우리 학교에서 많이 멀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별하게 됐다. '너는 결국, 내 남편감이 아니야'라는 마음으로.




 지금의 나는 이혼을 앞두고 있다. '결혼'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강요는 이제서야 그 맹렬하던 자취를 감추었다.

 우습지만 내가 결혼한 그 남자는 대학생 때의 그 오빠나 고 3 때의 남자 친구보다 더 절절히 사랑하지는 않았다. 나의 생물학적 한계와 사회적인 시선에 밀려서 택한 타협이었다.


 여러분 주위는 어떨지 모르겠다. 내 주위에는 수년이 지나도 여전히 '서로 사랑한다'라고 할 수 있는 부부가 거의 없다. 사랑은 사라진다. 빠르면 며칠 내에도 사라지고, 길어봤자 목숨이 다하기 전까지만 가능하다. 행복은 자주 찾아오지 않고, 어떤 한 이유로 인해 생긴 특정한 행복은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것처럼

 사랑도 자주 찾아오지 않고, 스스로 지속하지 않는다.

 식물을 가꾸듯 애정을 가지고 제때 물을 주고 돌봐주기를 게을리한다면 아무리 처음에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화분도 결국 생명을 다하게 된다.



 결혼을 해야 한다는 책무가 더 이상 내 어깨에 없어서 얼마나 마음이 홀가분한지 모르겠다.  나는 이제 그저 '사랑'을 하면 되니까 말이다. 하루하루 함께 즐겁게 잘 지내는 데 감사하는 그런 태도가 사실은 아주 어릴 적부터 마음 속에 그려온 사랑의 모습인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그저 사랑합시다. 그게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칠 지라도.

 그게 마지막에 결혼으로 이어지든 이어지지 않든 간에 말이에요.

 덧붙여 세상의 모든 연인과

 힘든 가운데서많이 애쓰고 있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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