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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Jun 26. 2022

알레르기

 삼 주 전부터 팔에 조그맣게 알레르기가 올라왔다. 살이 빨갛게 변하면서 가려움증을 동반하는 증상이 벌써 세 번째다.

 어릴 때 앓았다는 아토피가 성인이 되어서도 때로 애를 먹이곤 했다. 종합병원에서 알레르기 항원 검사도 해보았지만 딱히 특별한 무엇에 대해 생기는 건 아니었다. 의사들은 면역력이나 스트레스때문이라는 모호한 진단을 내렸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내 몸이 이런 쪽으로 그다지 건강하지 않은 단순한 이유인지도 몰랐다.


 처음 몸에 심하게 알레르기가 생긴 건 임신 말기에 장마를 앞둔 이맘 때였다. 쌍둥이 임신은 만만치 않았다. 입원이나 심하면 맥도날드 수술도 하는 다른 산모에 비해 나는 특별한 이벤트 없이 잘 넘어간 편이었지만, 알레르기와 혈압은 피해가지 못했다.

 그때도 몸 한 구석에서 시작된 빨간 발진이 임신 중임을 이유로 약을 먹지 않고 버티자 며칠 만에 온 팔다리로 퍼졌다. 출산 후 다잡으려 했으나 수유 때문에 효과가 센 약은 조심스러워 쓰지 못했다. 갓난쟁이 둘을 잠시 산후도우미에게 맡긴 채 그해 가을까지 수유에 지장이 없는 약한 약과 광선 치료만으로 겨우겨우 그 알레르기를 치료할 수 있었다.

 다음번 발병은 두 아이를 각각 시댁과 친정에 보냈을 때다. 복직한 첫 해기도 했다. 도저히 육아와 출근 둘 다를 하기 힘든 상황에서 남편 마음대로 둘째를 친정에 보내버렸다. 주말마다 딸아이를 보러 가다보니 병원도 그 근처에서 갔던 기억이 난다.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피부과 진료를 봐 온 의사 선생님은 한 방에 아주 강력한 약과 연고를 처방해 주셔서 일주일도 안돼 병변이 모두 수그러들었다. 받아온 연고는 채 다 쓰기도 전이었는데, 이번에 열어보니 모두 녹아 투명한 액체처럼 되어있었다.

 

 이렇게 쭉 내 알레르기의 역사를 나열해보니 매년은 아니지만 병이 생길 땐 늘 이맘때였구나 싶다. 공기 중에 물기가 너무 많아 축축해지는 장마철에 피부병은 스리슬쩍 시작된다.


 7월 초에 종결심이 잡혔다.

 말 그대로 이제 마지막 판결만 남아있다.

 아이들과 2학기 전에 서울로 올라오려 한다는 남편의 말에 지금 사는 집을 부랴부랴 세 놓았다. 부모님은 도와주시겠다고 한 금액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주겠다고 하셨다. 나도 크게 기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는 것도 어떨 때는 다 귀찮다.

 어제는 그래서 열두 시가 넘을 때까지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침 약을 너무 늦게 먹어서 그랬을까, 그새 가려움이 훨씬 심해지고 무릎까지이던 붉은 부위도 다리를 타고 허벅지까지 뻗어올라갔다.


 스테로이드제를 계속 먹어서일까? 얼굴만은 어느 때보다도 반짝반짝하다. 얼굴만 보고서는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양다리 사이에 붉은 강처럼 내 몸을 따라 흐르고 있는 이 병을.


 판결을 앞두고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다.

 하지만 그 판결이란 너무 억울했다. 폭력에 시달려 살아온 세월도 그러할 뿐 아니라, 비양육자로는 앞으로 아이들의 일에 아무 관여도 할 수 없다는 것이 특히 그렇다.

 그리고 그 판결이 있은 후

 나는 아마 자발적으로도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전남편과 어떠한 교류도 원하지 않는 까닭에서다. 그는 예전에 살던 근처 동네로 이사 올 계획이라고 했다. 그가 무엇을 바라며 이 근처로 오려는지 상관없다. 이제 모든 게 정리되고 나면 아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주 기본적인 도리만 할 생각이다.


 아이들에게 혹여 무슨 나쁜 일이 생긴다면 지금의 나를 어떻게 탓하지 않을  있을지 모르겠다.

 이혼이란 이별보다 훨씬 힘들다. 아이를 두고 이혼하기란 이렇게나 더 힘들다.

 아마도 사람들은 내 해살해살한 얼굴을 보며 생각지 못할 것이다. 그 밝은 얼굴 뒤로 숨겨진 피투성이의 마음을.


 이번 알레르기는 낫는    시간이 필요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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