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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Jun 28. 2022

딜레마

http://naver.me/x0GdmEH3


 이런 기사는 어제 자지만, 심심치 않게 자주 만날 수 있다. 작년 부모 조사 때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 그 기사를 스크랩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저 기사처럼 결과가 죽음이 아니었지만, 범행을 저지를 때 남편의 마음은 이와 똑같았다. 아이가 울고, 보채서 참지 못했다.

 기사 속 남자가 얼마나 자주 그러다 결국 아이를 죽였는지 모르겠지만, 내 남편도 여러 번에 걸쳐 아이를 때렸다.

 요즘 벌써 무척 습하고 덥다. 2017년 여름도 그랬다. 삼복더위에 첫째를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방에 가둬두다시피 하고 아이가 울어도 가보지 않았다.

 그런 그가 무서웠던 나도 가보지 못했다.




 최종심에서 할 말은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판사가 듣든 말든. 어쩌면 지금 느끼는 스트레스는

 ‘그런 인간이 아이를 키워봤자 얼마나 잘 키우겠어.’

 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을, 겨우 여섯 살밖에 안된 귀한 두 딸을

 마음속에서 차라리 지우고 싶기도 하다는 걸

 오늘 아침에서야 깨달았다.

 

  엄마로 남은 생을 살고 싶으나

  그것이 주어지지 않을 까닭에

  무엇을 생각하고 바라면서 앞으로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나

  막연히 앉아서 눈물만 흘리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

 

 이제 나는 선언하노라니

 전남편의 폭력을 굳이 잊거나 용서하려 하지 않겠다.

 이 얼마나 인간으로서 오만한 생각인가? 신이 되겠다니.

 나는 사람인 까닭에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 않는 그를

 마음이 가는 대로 미워하겠다.

 그 결과 아이들에게 악영향이 간다 해도,

 그 또한 아이들의 복이자 나의 그릇 크기이다.

 누가 나를 욕하겠는가?


 내가 나를 안아주겠다.

 그렇게 이전 시간을 세월에 떠나보내겠다.

 그는 용서할 가치가 없는 인간이다.

 그가 육아를 하며 겪을 모든 어려움은

 오롯이 그의 몫이다.

 거기에 내 지분은 없다.


 이것이 나의 선택이고

 나는 나름의 최선의 선택을 하며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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