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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Jun 21. 2022

제철 과일

 오디를 한 바구니 사 왔다.

 씨앗을 뿌려 싹을 틔운 봉숭아 모종을 1반 선생님과 얼마 전 교정에 옮겨심으며 오디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자 오랜만에 오디가 무척 먹고 싶어 졌다.

 그래서 그다음 날 시장에 가서 찾아봤는데, 한 상인 분이 이미 날이 더워서 물러서 팔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 오늘 우연히 보게 되어 낼름 업어왔다.


 생각했던 과즙 가득한 단 맛은 아니고

 오히려 과일주가 생각나는 어른 맛이다.




 그와 친해진 건 딸기의 역할이 컸다.

 그의 사무실에서 첫 데이트를 할 때

 나를 주겠다며 챙겨놓은 딸기팩을 둘 다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리고는 3월, 내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

 집 앞으로 딸기 한 팩과 케이크, 그리고 약 조금을 챙겨다 주었다.

 내가 낫고 나자 얼마 뒤 그가 걸렸고,

 외출이 부자유스러운 그를 위해 그가 좋아하는 딸기를 챙겨주려 했던 마음이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그는 데미소다 애플을 좋아하고

 감자깡과 고구마깡을 즐겨 먹으며

 장거리 운전을 할 땐 신 젤리를 준비해 놓는다고 한다.

 나는 즐겨먹지 않는 참외를 그와 먹으려 샀다.

 아, 역시 맛이 없다.

 그가 먹어보지 않은 초당 옥수수를 권하며

 그의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 먹을 만 해 했다.

 줄대로 깨끗하게 알알이 먹고 남은 옥수수 몸통이 예뻤다.

 수박은 혼자서는 영 사기 상그러운 과일이다.

 그래서 올해 처음 함께 먹는 수박은 더 꿀맛이었다.

 



 오늘 과일가게에 갔더니 수박 값이 많이 내려가 있었다.

 얼마 전까지 마트에서 이만 원 가까이에 팔았는데 오늘 보니 만원 정도로 내려갔다.

 하지만 수박보다도 조금만 더 있으면 아주 맛있어질 복숭아를 기다린다.

 그가 좋아하는 크고 물렁한 백도가 있나 본다. 자그마한 녀석들은 벌써 나와 있다.


 사는 건 별 거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병오월의 관이 이글이글 탄다.

 이렇게 누군가와 제철 과일을 제때 같이 나눠 먹기만 하는데도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다만 이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잊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뜨거워진 공기 사이를 가르는 산들바람 같은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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