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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Jul 30. 2022

이혼 신고하던 날

 기다리던 판결문이 어제 집으로 온다고 했다. 이제 그걸 들고 구청으로 가서 신분증과 같이 내밀면 끝이라고 했다.

 잠시 외출한 사이에 우체부에게서 전화가 와 편지함에 넣어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부랴부랴 돌아와 판결문을 꺼냈다. 어떻게 신고를 해야 하는지에 관한 절차 설명이 클립으로 철해진 두꺼운 서류 뭉치 에 마치 표지처럼 올려져 있었다. 서류 더미를 넘겨보니 두 번째 장에 비로소 ‘ooo와 ooo는 이혼한다’라는 판결문과 손으로 쓴 세 판사의 서명이 보였다. 나머지 뒷부분은 더 넘겨 읽을 필요가 없었다.

 그쪽보다 먼저 신고하고 싶었으므로

 ‘늦기 전에 가 봐야지.’

 란 마음으로 이미 아침 외출로 무거워진 몸을 일으켰다. 가까운 구청은 두 개였는데 그중 덜 붐빌 것 같은 곳을 골라 힘껏 출발했다. 습하고 더운 날씨였다. 처음 이혼 생각을 하며 부모 교육을 받을 때 단풍으로 붉게 물들었던 법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로부터 무려 네 바퀴의 계절이 지나갔다.


 구청 앞은 푸른 잔디를 마당처럼 넓게 깔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데리고 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구청에 들어가려는데 출입문 앞에서 정장을 입은 한 직원이

 “1층이 방역 중이라 십분 정도 기다리셨다 들어가셔야 해요. 무슨 업무로 오셨죠?”

 라고 물었다. 나는 덤덤한 얼굴로

 “이혼 신고요.”

 라고 답했다. 다행히 그는 놀라거나 의아하단 표정은 짓지 않았다. 나는 출입문을 등지고 몸을 돌려 기다리는 동안 다시 그 넓은 잔디밭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왼쪽에는 수국, 오른쪽에는 큰 LED 스크린으로 신경 써서 꾸민 티가 다. 맞은편에 보이는 횡단보도에서 보기만 해도 시원한 분수가 간헐적으로 큰 소리를 내며 위로 뿜어졌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분수가 나오는 소리는 그 주위의 아이들 노는 소리와 섞여 마치 같은 곡조의 테이프를 반복해서 틀어놓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 눈에 커다란 나무 하나가 들어왔다. 분수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 같이 키가 큰 나무였다.

 ‘저 나무는 좋겠네. 고민 없이 저기 계속 서서 저렇게 노는 아이들을 계속 볼 수 있어서.’

 손발이 달려 움직일 수 있기에 끝없이 다음 행동을 선택해야 하는 인간의 번뇌가 없어서, 또 이제는 잘 볼 수 없게 된 두 딸이 생각나서 그 나무가 부러워졌다.




 문이 열리고 들어가자마자 바로 앞쪽에 가족관계 신고 창구가 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이혼 신고하러요.”

 역시 무덤덤한 얼굴의 창구 직원의 왼손에 반지가 반짝거린다. 아, 결혼했구나. 남편을 둔 사람이 바라보는 이혼 하러 온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문득 저 창구 안으로 들어가 내 얼굴이 어떤지 바라보고 싶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투명한 유리 가림막 때문에 반은 내 얼굴이 보이고 또 반은 나를 응대하는 여직원의 얼굴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보였다.

 ‘가족 관계 신고는 접수하는 순간 취소가 되지 않습니다’

 가림막에 빨간색으로 붙여놓은 글씨를 보자 속으로 웃음이 났다. 이런 중요한 서류도 접수를 했다가 바로 취소해 달라는 사람이 있나 보다.

 이혼 신청 서류에 나와 전남편, 아이들의 주민 번호를 적어 넣고 친권, 양육권에 ‘부’를 표시했다.

 “저쪽에서 오늘 오전에 먼저 접수를 하셨네요.”

 그럴 리가. 우편을 받고 바로 왔는데.

 “알겠습니다.”

 괜히 온 셈이 되었다는 불쾌감과 ‘네가 감히?’라는 분노가 같이 올라왔다.


 - 근데 너 전남편 정말 가증스럽다. 판결 끝나니까 프사에서 애들 사진 싹 내린 거 봐.

 마치고 영주와 이야기하다 그녀가 해준 말이다. 나에게는 그저 계속 까맣게만 보여서 더 물어봤더니 애들 없는 새 프로필 사진을 캡처해서 보내주었다. 카카오톡 멀티 프로필 기능을 이용해서 나에게는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는 기본 프로필 사진이었다.

 - 숨김 처리했나 봐. 목록에서 없어졌어.

 - 웃기네. 신고하자마자. 난 아직도 애들 사진 있는데.

 나도 어제 프로필 사진 정리를 했다. 내 사진 중 그를 보고 웃었던 건 모두 지웠다. 그리고 한동안 계속되는 아이들 사진은... 그대로 두었다.

 - 며칠 전부터 그랬어. 아마 판결 나자마자 한 듯.


 그랬다. 그는 그런 남자였다. 좀 홀가분해지려던 마음이 다시 아이들 걱정으로 차오르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와 내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아빠를 나보다 더 살갑게 여긴 세희의 선택을 이제 받아들여야 한다. 쌍둥이 자매를 차마 둘로 찢어놓지 못해 거기서 같이 자라게 된 지희의 운명도. 내 아이이기도 하지만, 그런 그의 피를 물려받은 그의 아이이기도 했다. 앞으로 아빠 밑에서 크면 아빠 쪽 유전자가 더 크게 발현되겠지.

 나는 그저 이제 그런 인간과 더 이상 혼인 관계에 있지 않다는 데 안도를 느끼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죽을 것 같이 힘든 시간도

 지나고 나서 다시 웃어 보일 수 있다는

 그런 본보기 정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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