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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Aug 08. 2022

딱 맞는 신발 고르기

 지난 목요일부터 아파트 헬스장 안에서 하는 줌바를 시작했다. 예전 아파트 살 때 해 본 적이 있어 오랜만인데도 따라가는데 어렵지 않고 무척 즐거웠다. 큰 거울로 비치는 나이키 운동화의 형광 분홍색 끈이 위아래를 다 검은색으로 입은 옷과 대비되어 눈에 띄게 예뻐 보였다.

 '운동화 안 산지도 오래된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그 운동화는 전남편이 연애하며 사준 물건이었다. 춤추는 도중 오른쪽이 자꾸 벗겨졌다. 바닥도 미끄럽게 느껴졌다. 이제는 버리고 바꿀 때가 된 거라고 내게 말하는 듯했다.

 대구에서 딸들을 보고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핸드폰에 '나이키 멤버스 데이'라는 광고가 보여 클릭해보았다. 그날까지만 할인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무심코 괜찮아 보이는 무난한 모델을 사려는데 남자 친구가

 "나는 그런 건 직접 가서 다 신어보고 사."

 라고 말해 결제 버튼을 누르려던 내 손가락이 멈췄다. 일부러 품을 내어 매장에 가서 물건을 직접 보고 고른 게 얼마나 되었던가?




 다음 달 이사를 앞두고 요즘 매일 하나씩 안 쓰는 물건을 내다 팔고 있다. 오늘은 신발을 모조리 꺼냈다. 잊고 있던 신을 만한 여름 신발들이 우르르 나왔다. 이제 여름이라고는 고작 한 달 남았는데 너무 늦게 발견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발이 아파 손이 잘 가지 않는 아이들은 미련 없이 비닐봉지에 넣었다. 정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봉투가 묵직해졌다.

 신발장 한쪽 칸에 비싸게 주고 산 페라가모와 탠디 구두가 보였다. 작년에 더현대에서 충동적으로 사놓고 발이 아파 신지 못하는 어느 이탈리아 브랜드의 가죽으로 된 여름 신발도 꺼냈다. 신발장은 어느새 신어야 할 신발들과 팔아야 할 신발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을 직접 보고 사는 일은 어느새 인터넷에서 사는 일보다 큰 용기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일단 점원을 귀찮게 한다는 점에서 그랬고, 그렇게 귀찮게 한 다음 끝내 그 물건을 사지 않았을 때 드는 미안함이 싫었다. 그래서 여러 장의 사진과 다른 사람의 후기에 기대 선택을 했고, 가끔 실패하더라도 개의치 않는 쪽을 택해 지내왔다. 그 편이 편했다.


 남자 친구와 몇 번 쇼핑을 같이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여성 매장은 그냥 쓱 둘러보고 지나쳤다. 물건을 보다 마음에 들어 하면 그가 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까 봐. 그가 사주면 어쩌나, 또 사주지 않으면 어쩌나 여러 가지 변수를 생각하기 머리 아팠기 때문이다. 내 건 아직까지 내가 사는 게 마음이 편하다. 그 두 번의 쇼핑으로 산 건 그 자신의 티셔츠 두 벌과 한 벌의 바지가 다다.


 처음에 큰돈을 주고 귀하게 모셔왔을 자주색 페라가모 정장 신발과 몇 번 신지 않아 여전히 가죽 무늬가 멋진 탠디 신발을 당근에 내놓으며, 이 비싼 신발들이 사실은 신을 때마다 얼마나 불편했는지 떠올려본다. 분명 신어보고 샀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내 '고르는 능력'에 의심이 든다. 사람이던 신발이던 난 실제로 보고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걸까.


 운동화 사는 게 그리 다급한 일은 아니어서 오늘 매장을 가볼까 하다 이내 그만두었다. 매장에 가서 신어 본다 한들 내게 딱 맞는 상품을 제대로 고를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다. 그냥 온라인으로 시킬 걸 그랬다. 그래서 어디가 불편하거나 맞지 않으면 보지 않고 산 탓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누구와 같이 쇼핑을 가기도 아직은 좀 그렇다. 크게 불편하지 않다면 전남편이 사줬든 어쨌든 신던 운동화를 오른쪽 신발끈을 좀 조여서 더 신을까? 이런 작은 물건 사기도 어쩐지 어려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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