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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Oct 10. 2022

피를 나누었다는 것

 둥이들이 원래 살던 곳 근처로 이사를 왔다. 덕분에 더 이상 대구로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


 전남편은 그전에는 하지 않던 말을 했다.

 "애들 안 보고 싶나?"

 일 년 넘게 대구에서 면접 교섭할 때는 꺼내지 않던 말이다. 보여달라고 사정을 해도 몇 개월간 연락조차 끊을 땐 언제고, 이제는 오랫동안 아이들을 만나지 않는 게 불만인가 보다. 지난 면접 교섭 때는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는 일 둘 다 내가 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을 거면 다시 아이들 데려가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이제 막 만나서 안전벨트를 매는 두 딸에게

 "아 그럴 거면 내려, 얘들아 내려."

 라는 말도 안 되는 떼를 부렸다. 2주 만의 면접 교섭을 안 하기도, 원래 한쪽이 데려다주고 다른 한쪽이 데리고 오는 게 관례라는 말을 하기도 그만 귀찮아져서


 - 판결문 어디에 그런 문구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라고 짤막하게 보냈다. 면접 교섭은 상호간 합의다. 정해진 법이 없다. 답이 없는 그가 한심했지만 왈가왈부 싸우기 싫어 그냥 같은 시간에 내가 데리고 갔다 데리고 온다고 해버렸다.

 생각해보니 혹시 또 음주 운전에 걸려 운전을 못하는 상황인가? 늘 음주 운전을 하는 사람이니 또 걸려서 면허 취소가 돼도 이상할 건 없다. 그렇게까지 발끈할 일은 아니었는데 참 이상하다.


 그 면접 교섭 이후 첫 면접 교섭이었던 이번에는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늘리려다가,

 "지난번과 똑같이 하기로 했잖아요."

 라고 했더니 또

 "애들 안 보고 싶나? 싸가지 하고는."

 이라는 막말을 했다. 이제 서류 정리가 된 남남끼리 왜 예전에 같이 살 때처럼 구는지 모르겠다.

 "막말하지 마세요. 두 시에 옵니다."

 라고 말하고는 차 문을 쾅 닫았다. 막 출발하려는데 뒤에서

 "엄마, 우리 벨트 안 했어."

 라는 말이 들렸다. 다시 차를 세우고 아이들 벨트를 메어주면서

 '정말, 저런 인간성을 왜 진작 보지 못하고 결혼했을까?'

 하는 후회가 다시금 밀려왔다.




 오랜만에 보는 두 딸은 이혼 가정에서 크고 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밝다. 하긴, 엄마인 나도 밝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그런 것도 유전이라면 유전일 거다. 자주 웃는 햇살 같은 표정을 보고 있자니 눈이 부시다가 돌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렸을 적에 무서움이 많고 움직이기보다 책을 끼고 살던 나와 달리, 둘째는 용감하고 몸으로 뛰어다니며 잘 논다. 내 안에서 나온 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첫째는 키와 체격은 둘째보다 크지만 멘탈은 약하다. 키즈 카페 안에서 둘째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트램펄린 위에서 둘이 번갈아 가며 한 명이 눕고 한 명이 뛰기를 한다. 둘째가 외줄 타는 모습을 보고 첫째도 도전한다. 기특하다.

 '너희는 자매라서 참 좋겠다.'

 남동생만 있는 내게는 부럽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그렇게 별로인 남자와 낳은 아이인데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그저께 줌바 시작을 막 하려고 몸을 푸는데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나 뇌종양이래."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병명이 아니던가. 내가 꼬치꼬치 묻기 전에 남동생이 먼저 미주알고주알 설명을 시작했다.

 "떼내면 괜찮대. MRI 찍었고 곧 서울 병원 몇 군데 올라가 보려고."

 동생이 먹여 살리고 있는 올케와 두 딸이 걱정됐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동생에게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나중에 들어보니 눈에 초점이 잘 맞지 않고 시력이 나빠져 안과에 갔더니 안과적으로는 문제가 없고 MRI를 찍어보라고 권유받았다고 한다. 주변 사람이 걱정할까 봐 애써 덤덤하게 말하는 동생의 목소리가 더 안쓰러웠다. 겉으로 티 내지 못하고 사실 그 소식을 아는 누구보다 더 힘들 것이다.

 다다음주에 하루 차이로 종합병원 두 군데를 오게 되어 우리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지겠다고 했다.

 '아, 손님용 요도 정리를 해버렸는데.'

 싶었지만 그게 뭐 대수랴. 걱정 말고 얼마든지 오라고 했다.

 그리고 날 좋은 오늘 오전에 다소 먼 곳까지 당근으로 쓸만한 요를 구해왔다. 환자인 동생이 추우면 안 되니 토퍼형 전기매트도 새로 주문했다. 전자파 영향이 없다고 되어있어 믿고 샀는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감마 나이프인가 하는 내시경 기술로 종양을 잘 떼어내고, 재발도 되지 않는 좋은 케이스에 나의 동생이 해당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외가는 가족력이 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큰외삼촌, 그리고 엄마까지 모두 부위는 다르지만 암에 걸린 적이 있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다행히 회복하셨지만 다른 두 분은 암으로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여러 번 걸리신 걸로 안다. 그리고 큰외삼촌은 뇌암으로 돌아가셨다.

 그 사실을 기억해 내고는 곧장 두려워졌다. 나도 이렇게 무서운데 동생은 오죽할까.

 당근으로 업어온 이브자리 요가 괜찮아 보인다. 이번 주에 크린토피아에 세탁을 맡겨야겠다. 하필 내일은 또 동생 생일이다. 뭘 갖고 싶은지 물어볼까. 새삼 하루 전에 미리 물어보면 오히려 어색할까? 째깍째깍 인생의 초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순간이다. 나도, 만약 오래 살지 못한다면, 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면 뭐가 아쉬울까, 하는 질문을 저절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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