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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Aug 30. 2022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소설이 원작인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All the boys I've loved before)'라는 영화가 있다. 여름방학 때 선배 언니의 추천으로 보았는데, 나도 어제오늘 과거의 남자들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누가 더 사랑하느냐에 따라 연인 사이에는 모종의 우월 관계가 생긴다. 스무 살 때 갓 서울로 올라온 나를 두고 서른이 다 된 먼 친척 언니는 대학로의 한 커피숍에서

 "여자는 사랑을 받는 편이 더 나아."

 라고 말했다. 그때 그녀의 표정에서 누군가를 너무 많이 좋아하다 생긴 깊은 그늘이 어린 나의 눈에도 투명하게 잘 보였다. 나도 공감하는 바였다. 남자는 제멋대로다. 여자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경우는 드물다. 반대는 잦다. 그러므로 여성인 이상, 내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다가가기보다 나를 좋아하는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편이 연애에 있어서 편리하다. 이십 년이 다 된 지금도 여전히 부인하기 힘든 말이다.


 그와 헤어지고 집안 정리에 분주해졌다. 그가 공들여 물꽂이를 해서 조금 키운 뒤 우리 집에 와 남서향 거실에 쏟아지는 햇빛을 듬뿍 받고 무럭무럭 자라던 애플민트에 헤어진 날부터 물 주기를 그만두었다. 이사 가면 버릴 물건에 붙이고 있는 노란색 포스트잇을 그 플라스틱 갈색 화분 몸통에도 눈에 잘 보이게 정중앙에 붙였다.

 아침은 그가 예전에 보내준 통새우완탕을 일부러 끓여 먹었다. 하나라도 더 먹어야 빨리 다 없앨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더 이상 원래 쓰던 낮은 테이블이 팔리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거기에 입을 댈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헤어짐의 이유를 설명하다 그에게 한 번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음을 새삼 떠올렸다. 그리고 여기서 헤어진 전남편을 떠올린다.




 그가 여전히 지긋지긋하게 싫은 건, 그도 역시 나를 마찬가지로 대하는 건

 우리가 한때 결혼을 약속할 만큼 절절한 사이였기 때문이라는 걸 지금에서야 이해한다.

 사랑하고 결혼하고 그 결과 두 아이까지 낳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있지 않았다면

 아직까지도 이렇게 헐뜯고 괴롭힐 이유도 그다지 없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쌓아 올린 그 시간들이 지금 이렇듯 처참한 상황이 되었다는 걸 우리 둘 다 아직까지 믿기 어려운 걸까. 아직까지도. 나는 여전히 그의 얼굴조차 똑바로 보기가 어렵다.

 함께 한평생을 잘 살고 싶었던 뜨거운 소망이, 세상에서 오직 너만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너무 오랫동안 서로를 괴롭히는 깊고도 부담스러운 상처가 되었다. 거기에 질린 나머지 이번에는 조금 뜨뜻미지근한 연애를 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언제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언제 돌아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그렇기에 집착도 미움도 없는 그런 관계를. 영화 속 주인공 라라 진도 몇 년간을 열렬히 좋아했던 조시가 아니라, 반쯤은 장난처럼 계약으로 시작한 피터와 진짜 연애를 시작했던 것처럼 말이다.


 예상한 대로 그리 나쁘지 않다. 여전히 하루 루틴에 맞춰 잘 생활하고 있고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걸 보면. 아니, 뭐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함께하는 시간 동안 정말 '헤어져도 괜찮을 만큼' 잘하고자 둘 다 노력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다만 '사랑한다'는 한마디를 끝끝내 마음을 담아 말해보지 못한 건 역시 아쉽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연애, 혼자여도 괜찮지만 그런 사람 둘이 함께 더 좋은 시간을 보내는 연애는 더할 나위 없이 건전했다. 다만 순간순간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건 나란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 같다.




 생각지 않던 사람이 다가와

 "당신이 좋아요."

 라고 말해 시작되는 연애는 이제 식상하다. 먼저 용기 내 다가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연애의 시작은 같이하고 싶다. 비슷한 지점에서 두 마음이 합쳐지며 자연스레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부터 당신이 내 남자 친구, 내가 당신의 여자 친구라는 점만 정확히 짚는다면 굳이 남자가 거창하게 고백을 먼저 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와 다시 죽을 만큼 사랑하고 싶은 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나의 가장 최근 연애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도 아마 나처럼 일상을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훗날 나보다 먼저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까맣게 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그게 나쁜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간의 지난 연애를 쭉 되돌이켜 봤을 때 늘 떠오르는 몇 명이 있다. 그건 둘 중 하나다. 그가 나를 너무 사랑했거나, 내가 그를 지나치게 많이 사랑했거나. 기억에 남는다는 건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가슴 아픈 기억이 많다는 건 어떻게 보면 그 자체로 상처라는 뜻도 된다. 그래서 이제 자신을 불사르는 사랑은 거절하고 싶다. 누군가 나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그 이상을 하기 위해 너무 많은 애를 쓰거나, 그 반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냥 베풀 수 있는 그릇 자체가 커서 무언가를 해주는 게 힘겹지 않는 그런 사람 옆에 편안히 앉아있고 싶다. 그리고 나도 그에게 그런 사람이 돼주고 싶다. 두 사람이 앉은 배경에 내가 좋아하는 ‘세상의 모든 음악’ 흐르고 그 사이사이로 타닥타닥 내가 자판 치는 소리만 조용히 도드라지는 그런 풍경을 감히 떠올려본다.


 ... 그리고 그 풍경이 부디 멀지 않은 미래였으면 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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