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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Dec 31. 2022

의외의 행복

 2022년의 마지막 날. 아픈 남자친구의 약을 사러 나왔다가 공차 간판이 눈에 띄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비교적 새 가게인데 그새 커피 가게가 두 개나 더 생겨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약국에서 쌍화탕과 코감기약을 사고 그곳에 들러보았다. 이제는 익숙한 키오스크에 간발의 차로 커플이 먼저 가 섰다. 그 뒤로 줄을 서서 기다리려는 내게 매장 직원이

 "여기서도 주문 도와드릴게요."

 라고 우렁차게 말했다. 큰 눈에 까만 머리가 얼굴을 더 희어 보이게 만드는 서글서글한 젊은이였다.

 

 당연히 키오스크에서 차례를 기다려 기계와 한 판 씨름을 할 줄 알았던 나는 신이 났다.

 "바닐라 티 라테도 당도를 조절할 수 있나요?"

 "네. 지금 50프로인데 30프로 해 드릴까요?"

 요즘 T멤버십에 빠져있던라 순간 그 퍼센트 이야기가 할인율로 들렸다.

  "네? 50프로 행사해요?"

 그런 뉴스는 들은 적이 없는데 싶었다.

 "아, 그게 아니라. 당도요."

 아차! 당도를 낮춰달라고 해놓고 혼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멋쩍어져 크게 웃었다.

 "아... 네 당도 30으로 해주세요."

 "펄은 필요 없으세요?"

 "네. 따뜻하게 먹을 거라 괜찮아요."

 "어, 근데 손님. 바닐라 티 라테는 따뜻한 게 없어요. 아이스만 있어요."

 "아, 그래요? 그러면 펄 넣어주세요. T멤버십 할인 돼요?"

 "네."

 친절하게 할인 적용이 되었다는 말까지 듣고 나자, 이 무슨 호사인가 싶다. 그저 주문을 하기 위해 진짜 사람 직원과 나눈 몇 마디가 의외의 기분 좋음을 불러왔다.




 요 몇 년간 으레 약간의 우울을 바닥에 깔고 지내온 것 같다. 2022년은 그런 내게 오늘 일처럼  '의외로' 마음이 편했던 해였다. 어쩌면 조금은 행복하기도 했던 것 같다.

 요즘 가끔 결혼 전에 했던 다른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를 떠올려보곤 한다. 과한 기대는 뭘 해도 재미없게 했다. '당연히 내게 이 정도는 해 줘야 마땅하다'는 생각, 이혼을 하며 그것을 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의외로 행복하고 또 고마운 것 같다.

 보잘것없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독자님께 새로 찾아올 2023년은 이렇듯 의외의 기쁨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아니 사실, 우리 모두에게 특출 난 불행만 없이 한 해를 보낼 수 있기만 해도 그것으로 되지 않을까?

 당신의 한 해가, 나의 한 해가 별 일 없이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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