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희 Jan 02. 2023

헤어졌다

 혹시 몰라 연필로 써 두었던 그 애의 생일을 지우기 위해 지우개를 찾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 애의 거짓말, 내적인 이유는 권태였다.

 가슴 뛰게 다가온 처음과는 달리 너무 금방 익숙해져 버렸다. 낮과 밤이 바뀌어 나와는 거꾸로인 그 애의 일상도 한몫했다. 같이 있는 시간이 시시해져버리고 말았다. 거기에 그 애의 거짓말이 얹어졌다.


 실은 그 거짓말을 알게 된 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눈감고 넘어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내가 왜?'

 라는 마음이 고개를 쳐든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를 찾느라고 시간이 이렇게 흐르기도 했다. 다행히 다른 여자가 생긴 것 같진 않고 나와 잘 지내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을 확인한 후, 오늘 이별을 고했다.


 사실을 다 알면서 상대가 진실을 말하기를 기다리는 일은 실로 고역이다. 무슨 이유에서건 간에 한 번 뱉은 거짓말은 다시 스스로 주워 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니까. 하지만 한 번 거짓말한 사람을 앞으로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것이 이별의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어쩌면...'

 이라는 예감으로 그 애 생일을 새 다이어리에 연필로 써 둔 걸 보면 나도 그간 헛으로 연애한 건 아닌가 보다. 즐거웠다!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헤어지는 지금 그 애에게 미안하지 않다. 그 애는 아마 내게 고맙고 미안할 것이다. 나만 그 애를 미워하지 않으면 된다.


 자, 다음 분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실 예정이신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우유 맛을 좋아하던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