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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Feb 02. 2023

거짓말

 학교에서의 2월은 한 학년도를 정리하는 달이다. 끝나는 마당이라도 성적표 마무리에 새 학년 분반까지 일이 많아 바쁘다. 이제 곧 헤어질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내가 너무 풀어줘서 새 학년 선생님께 혼나지는 않을까 걱정이 다. 어제도 미술 시간에 크로키를 하는데 반쯤 장난으로 아무렇게나 막 그리는 회장 남학생을 보고 있자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일 년을 났다는 데 대한 안도감과, 이제 헤어질 시간이라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요즘이다.


 오늘 교장선생님과 다른 한 선생님의 퇴임을 축하하는 회식 자리에 다녀왔다. 코로나 이후 전 직원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한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같이 모여 앉은 우리 학년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이번 학년도 마지막이 다가왔다는 느낌이 마스크를 벗고 정답게 얘기하는 중간중간 자주 들었다.

 당황스러웠던 건 아이들 이야기가 나왔을 때였다.

 "부장님은 오늘 아이들 하원 남편 분이 시키세요?"

 다른 선생님의 아이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어느 분이 물으셨다. 매일 남편이 시킨다고 하려다가 그냥

 "네."

 라고 짧게 답했다. 그 후 이어진 남편의 평소 퇴근 시간에 한 질문에는

 "미리 말하면 일찍 퇴근할 수 있어요."

 "평소에도 일찍 퇴근해요."

 라고 이전 결혼 생활 하던 때를 떠올려서 답했다. 아주 멀리 떠나온 시절이었다. 마음 한편에

 '언제까지 이렇게 이혼한 사실을 숨겨야 하나?'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직장에는 역시 비밀로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전 다시 태어나면 결혼 안 할 거예요."

 "어? 나돈데."

 뜻이 맞았다며 얼굴을 마주 보고 두 선생님께서 깔깔 웃으셨다. 그 의미를 아는 나도 같이 웃었다. 이어서 그중 한 분이 말씀하셨다.

 "그래도 연애는 할 거예요."

 그 결혼 않고 연애라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답니다,라고 말하고 었지만 으로는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 자유가 주는 달콤함은 무한정하게 좋다. 하지만 그 이면의 그림자로 외로움도 늘 따라다닌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어쩔 수 없이 쓰다.




 얼마 전 클럽에서 나이와 이혼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다가 같이 간 언니에게 혼이 났다.

 "여기서 만나서 결혼할 거야? 뭐 하러 사실대로 다 말해. 나도 갔다 왔는데 7년 동안 클럽 다니면서 그런 말 한 번도 한 적 없어. 나이랑 그런 거 다 말해서 사람들이 알게 되면 우리 못 놀아."

 처음에는  말에 반감이 들었지만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었다. 그런 덴 남자들이 어리고 예쁜 여자를 보러 오는 거니까 말이다. 굳이 내 사생활을 다 말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카카오톡 기본 프로필 사진을 정리했다. 나의 신분과 사생활을 짐작할 만한 사진은 모두 지웠다. 그게 거기서 노는 사람들의 TPO라고 한다면, 까짓것 그래, 못 맞춰줄 것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참으로 거짓말이 싫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일도, 남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도. 하지만 올해도 직장에 이혼 사실을 내 입으로 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보수적인 사람들 입방아에 그런 걸로 오르내리고 싶지는 않다.

 클럽에 놀러 가서는 잘 어울려 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질문을 던지는 상대방에게 제법 깎은 거짓 나이를 얘기할 것 같다. 물론, 이혼과 아이 얘기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진실로 내 말벗이 되어주는 이곳 브런치에 조차 수 년째 필명을 쓰고 있다. 그냥 나에게 자유를 주는 가벼운 한 꺼풀의 가면이라고 생각할까? 앞뒤로 오가지 못하게 된 바람과 현실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겁쟁이처럼 타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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