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한글을 창제할 때 세종대왕의 나이가 무려 마흔일곱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오십 년을 채 살기가 무척 어려웠던 시대였으니 오늘날 나이로 환산하면 대략 칠순에 해당하는 많은 나이다.
그에 비해 내가 무엇을 시작하기에 늦었다는 생각이 조금씩 자주 들기 시작한 건 마흔이 넘고부터인 것 같다.
출근길에 차에서 매일 듣는 ‘출발 FM과 함께‘라는 클래식 프로그램이 있다. ‘이번엔 되겠지’란 심정으로 두 번 떨어진 후 세 번째 선물 신청 사연을 보냈는데, 정말로 당첨이 되었다. 롯데콘서트홀에서 하는 예핌 브론프만의 피아노 연주회였다.
예핌 브론프만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는데 그 앞에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게 보였다. 검색을 통해 그가 소련 출신이고 올해가 데뷔 50주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련, 잊힌 이름. 거기서 태어나 이제 러시아 국적이 된 사람이라니. 그런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싶었다. 나라를 잃은 듯한 상실감 같은 걸 그의 긴 생을 통해 겪지 않았을까?
조국 러시아의 작곡가인 프로코피예프의 곡을 마지막으로 듣던 대로 박력 있고 섬세한 연주가 끝이 났다. 올해 그의 나이 67세. 많은 나이지만 무대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는 모습에 감탄과 박수가 절로 나왔다.
앵콜곡은 총 세 곡을 연주했는데, 그중 첫 번째였던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10월이 내게는 최고였다. 단조의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을 듣고 있자니 마치 그의 연주가 내 속으로 들어와 영혼을 맑게 정화해 주는 기분마저 들었다.
세계적인 음악가라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저렇게 열심히인지, 저렇게 열심히 하기 때문에 아직도 정상의 자리에 있는 것인지 그 순서는 잘 모르겠다. 단지 저 러시아인 피아니스트도, 한글을 처음 만든 세종대왕도, ‘이제 뭘 하기엔 늦었어’라는 마음으로 살지는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자신이 힘을 기울여온 일에 더욱 액셀을 밟으며, AI는 따라 하지 못할 훌륭한 창조물을 두 사람 다 만들어내었다.
그래서 나도 그래볼까 한다. 범인의 영역에서 평범하게 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나아지기 위해 각오를 다져본다. 그간 살아온 내 인생의 총합을 가지고 아직은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만들어 내겠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 길에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함께 해 외롭지 않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