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울

by 이주희

지방 도시 출신인 나는 서울을 사랑한다. 조용한 도로로 둘러싸인 서초동의 모교를 이제는 직접 차를 몰고 연수를 들으러 갈 때면 자주 옛날 생각이 난다. 열아홉 살 당시 엄마와 비행기를 타고 올라와 면접을 보고, 남부터미널의 러브호텔에서 묵었던 기억은 재미있는 추억이다. 과 동기들과 학교 옆 롯데캐슬이 얼마나 비싼지 얘기했던 것도 엊그제 같다. 시간이 흘러 새 건물이 옛 건물보다 더 많아진 학교 모습은 낯설지만, 거기에서 있었던 기억은 생생하다.

오가는 차들이 낮에도 바삐 움직이는 잠실의 넓은 도로는 갈 때마다 내가 서울에 있음을 실감 나게 한다. 요즘 나는 집에서 다리 하나를 건너 약대, 의대를 거쳐 지금은 한의사를 하고 계신 여선생님께 침을 맞으러 간다. 이런 귀한 분을 가까운 곳에서 뵐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뷔페도 한 번씩 혼자 간다는 친한 친구의 말에 용기를 내어 나도 점심 애슐리에 처음 홀로 가 보았다. 침을 맞고 다음 목적지로 가기 전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았고, 마침 딸기 시즌이라 애슐리에 들르면 맛있는 게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세 개의 애슐리가 있었는데, 그중 주차가 편한 가든파이브 점을 골랐다. 신혼 때부터 아이들 어렸을 때까지 자주 가던 곳이라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자마자 그때 생각이 났다. 운전이 익숙해져 혼자 이곳저곳을 갈 수 있는 지금은 그때보다 좀 더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키오스크로 1인 샐러드바 결재를 하고 들어가니 역시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들 자기 음식 가져가기 바빠서, 내 쪽으로는 양 옆 사람들만 흘끔 보는 정도였다. 그래서 서울이라는 대도시 속 익명이라는 이름의 고립을 마음껏 만끽했다. 애슐리의 딸기뿐 아니라 그 자발적 고독도 꽤 달달했다.




그리고는 저녁에 일본에서 내한한 유키 후타미 재즈 트리오 공연을 보러 갔다. 다닌 지 꽤 된 재즈 모임에서 처음으로 내가 모임을 열었는데, 다행히 두 분이 오셨다.

오시기만 한 게 아니라 두 분 중 한 분이 오스트리아 출장에서 직접 사 온 와인을 가져오셨다. 힘 있는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샤도네이를 마시고 맛있는 크림 파스타를 먹고 있자니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런 시간은 서울이라는 공간 덕분에 가능한 것 같았다. 완전한 타인과 우연한 인연이 느슨하게 엮여 기쁨과 슬픔, 때로 운명을 만나게 하는 곳. 이곳에서 외국인이 아니라 온전한 서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어제는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가서 교실 이사를 했다. 집이 가깝기에 미리 약속을 하지 않았는데도 선뜻 당일에 시간이 맞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다 낡아서 나사가 해체된 책꽂이를 보며 친구가 말했다.

“전쟁통도 아니고 이게 뭐야.”

서울 시내 학교는 정말 대부분 다 낡긴 했다. 그 책꽂이는 교실 밖으로 옮겨졌다.


가까운 곳에 친한 이가, 좋은 공연이, 맛있는 음식이 늘 기다리고 있는 서울. 나보다 훨씬 부자인 사람도, 훌륭한 사람도, 글을 더 잘 쓰는 사람도 많은 이곳. 할 수 있다면 이 도시에 영원히 살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는 일적으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냄으로서 이 멋진 공간에 어울리는 한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