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잘못이 아니야”
특별할 것 없는 저녁이었다. 한창 더위가 심했던 때였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술을 한 잔 걸쳐 나른해진 후였던 것도 같다.
소송을 시작하며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게 된 후 한동안 나는 예전에 좋아했던 내 모든 취미를 생각해내지 못했고, 그저 핸드폰만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다. 남편을 피해 나온 그 방 침대에서.
그러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검색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하릴없이 카톡 창을 들여다보았다. 늘 새로운 채팅 숫자가 화면에 떠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대답할 대상이 아무 것도 없을 때면 나는 곧잘 친구 목록에 있는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과 상태 메시지를 훑곤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가 궁금해서였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친구 목록에 있는 사람들의 사진과 상태 메시지를 정독하고 나서 밀려오는 감정은 ‘나 빼고 모두 행복한가 보다’란 상대적 패배감이었다.
친구 목록 맨 위를 늘 차지하고 있는 유리언니의 이름을 볼 때마다 최근 별거와 소송을 시작한 내 처지에 대해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불편하고 미안했다. 일 년 전쯤 한 후배의 결혼식에서 언니의 얼굴을 보고도 난 ‘좋은 날에 이런 말을 꺼낼 순 없지...’라며 합리화를 했었다. 언니가 서울에서 멀디먼 창원까지 어린 막내를 데리고 결혼을 축하하러 직접 와 준 걸 생각하면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 거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대학원생 시절에 언니가 두 아이 모두 일부러 내게 과외를 시켜준 것이나, 파혼을 겪고 난 후 “네가 너무 아까웠어”라며 위로를 건네던 언니에게만은 나는 누구보다 더 ‘시집가서 잘 사는 애’로 불리웠어야 온당했다. 이제는 자기 가게를 열고 사장님이 되어 언니답게 열심히, 바쁘게, 그러면서도 신나게 꿈을 펼치고 있는 언니에게 아이들이 태어나고 3년 동안 계속해서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왔다고, 그간 있었던 일들을 구구절절 설명하자니 어디서부터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다.
언니에게 설명할 말을 찾다 보니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를, 도대체 내가 맨 처음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를 찾고, 찾고, 또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애초에 잘못되었는지를.
“It's Not Your Fault.“
쉬지 않고 꼬리잡기를 하던 자책의 생각들은 최근 알게 된 한 사람의 상태 메시지를 읽은 후에야 겨우 멈추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내가 지나온 그 어두운 터널과 같았던 시간들을 단번에 이해받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가에 알지 못하는 새 눈물이 고였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 모든 게 네 잘못이 아니야.
그 상태 메시지는 내 귓가에 대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 사람의 그 다음 번 상태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우리는 완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완벽히 사랑할 순 있습니다.”
여러 사람과 와인을 같이 마시며 약간의 대화만 나눈 그 사람이 내 개인적인 사정을 알았을 리는 만무하다. 그는 누구를 위로하고자 이런 상태 메시지를 써 놓았던 걸까? 굳이 그 대상을 알지 못해도 좋다. 그 몇 줄의 글에서, 살아갈 수 있는, 그리고 어느 먼 훗 날 다시 어쩌면 완전히 이해받지는 못해도 약간의 사랑은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얻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