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이혼 기일(1)
지난 수요일에 첫 이혼 조정이 있었다. 소송 이후 처음 잡힌 기일, 처음 판사의 얼굴을 보는 날이었다.
내 변호사는 재산을 어디까지 양보하고 협의할 수 있는지 미리 며칠 전에 물었다.
나는 별거해 나오기 전 남편에게 제시했던 액수 그대로를 말했다. 그것도 내 입장에선 충분히 양보한 액수였다. 하지만 남편은 그 안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소송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 조정 기일에서 합의가 될 가능성은 0%라고 봐도 무방했다.
"네, 그리고 위자료는 안 받으시는 걸로요?"
'위자료를 안 받다니? 빨리 마무리하려면 이렇게들 하는 건가?'
처음 하는 이혼인지라 아무것도 모르다 보니 탐탁지 않았지만 알겠다고 했다. 변호사가 내 편인데 자기가 생각이 있으니 저러는 거겠지 싶어.
하지만 잠들려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간 남편의 물리적, 언어적 폭력으로 시달리고 산 세월이 억울해서라도 그럴 순 없었다. 그래서 기일날 법정 앞에서 변호사에게 안 되겠다고 했다.
"변호사님, 생각해봤는데 저쪽이 잘못한 게 많아서... 위자료 포기는 안 되겠어요."
"아, 그러셔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까부터 설마 남편일까 했던 낡은 나이키 운동화의 주인공이 알고 보니 그가 맞았다. ‘나타나지 않겠지’ 했던 내 예상과 다르게 나보다 먼저 얼굴이 안 보이게 저쪽 구석에 앉아있던 것이었다. 남편 앞에서 합의가 어렵겠다는 말을 변호사가 내가 나눈 셈이 되었다. 이름이 불리고 "네"라고 대답하며 남편은 나보다 더 먼저 조정실로 들어갔다.
"여기 앉으시죠."
내 변호사가 친절하게 이혼이 처음인 나를 위해 원고가 앉아야 할 자리를 알려주었다. 판사석에 마주 보는 끝 자리가 나와 피고인 남편의 자리였다. 그리고 양 옆으로 조정위원 두 분과 양쪽 변호사가 착석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 조정위원분이 먼저 말씀하셨다.
"에 여기 전셋집은 피고 측에서 들어간 돈을 계산해 봤을 때 60%를 원하신다는 거죠?"
그분은 말을 하기 전에 "에"를 붙이는 습관이 있었다.
"네."
남편이 명료하게 대답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지금 원고가 살고 있는 새 아파트는 그 계산법이 맞지 않겠는데요? 애초에 이 집이 가족 가산점을 가지고 청약에 당첨되었나요?"
내 쪽을 돌아보시며 물어보시길래 대답을 했다.
"아니오, 뺑뺑이였습니다."
순간 '랜덤'이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그분 나이를 생각했을 때 영어 단어로 얘기했다가 혹시 이해를 못하실까 봐 "뺑뺑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추첨'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에 그러면 더더욱 이 집 시세를 이렇게 피고 측이 제시한 높은 가격으로 볼 수 없을뿐더러 기여도도 저 전셋집처럼은 보는 게 부당하다고 보이는데요."
남편이 발끈했다.
"새 아파트 시세는 제가 소명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은행들이 돈을 빌려줄 때..."
내가 대출을 구하러 뛰어다닐 때 부동산 유무 확인조차 해주지 않았던 새끼가 청산유수로 집 가격에 대해 떠든다. 앞으로 지하철이 생기면 어쩌고 저쩌고. 최소 지금 분양받은 돈의 두 배가 넘는단다. 듣다 못한 우리 측 변호사가 물었다.
"오늘 합의를 시도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얼마면 합의가 가능하세요?"
남편과 그 변호사는 합의를 하지 않았는지 서로 눈치를 보았다.
"우리 측 얘기는 우리가 그 아파트를 갖고..."
"아니요. 저는 현금으로 다 청산해서 받길 원합니다."
다시 내 변호사.
"그러니까 얼마면 합의가 가능하신가요? 반소장에 적혀있는 7억?"
남편은 말도 안 된다는 듯 한숨인지 미소인지 "하"하는 소리와 함께 말했다.
"아니오."
"그럼, 8억?"
"10억이요. 10억이면 되겠습니다."
양쪽 집 재산을 전부 다 털어도 나올 수 없는 금액이었다.
당연히 그날 조정이란 없었다. 평행선 같은 양쪽 입장만 확인하자 조정위원이 판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도수가 높은 검고 둥근 안경을 낀 남자가 들어와 그 자리에 앉았다. 나와 두 딸의 운명을 쥔 사람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