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내가 꿈꾸는 사랑은

희극 아닌 비극

by 이주희

어젯밤 독서 모임방에서 결혼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영주가 한 사람이랑 어떻게 60년을 사느냐고 했다. 결혼할 때 다이아몬드로 예물을 하는 건 변하지 않는 그 속성처럼 영원을 맹세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러자 다른 한 분이 ‘40년 반감기 있는 원소로 예물을 하고 40년을 행복하게 살자고 하면 어떻겠냐’고 되받았다. 그리곤 20년 단위 갱신은 어떻겠냐고 하다가 결국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 결혼 얘기에까지 이르렀다.

엄연히 보부아르와 계약을 해 놓고서는 다양한 여자들과 바람을 핀 사르트르. 그런 그와 그래도 2년마다 재계약을 꼬박꼬박 했다는 건 보부아르가 그를 그만큼 사랑했다는 뜻일 터였다. 그리곤 내가, 영화 ‘콜드 워’를 샵검색으로 내보내고 ‘아직도 이런 사랑을 꿈꾼다’는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옷방에 던져져 있던 뭉그러진 박스 하나를 오늘에서야 정리했다. 안에는 남편의 스키복부터 내 수영복까지, 레포츠와 관련된 의복 종류가 뒤엉켜있었다. 버릴 것이 남겨둘 것보다 많아 몇 개만 빼고 박스 째 버려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분류 작업을 하다 결혼한 지 1년 즈음 남편이 독일에서 직구로 산 레스튜브(Restube)를 발견했다.

수영은 못하지만 스노클링은 좋아하는 내가 행여 바다에 빠질까봐 주문을 했는데, 한 달 반이 지나서야 겨우 한국에 도착했었다. 허리춤에 차고 있다가 위급할 때 버튼을 누르면 튜브처럼 부풀어 오르는 신박한 구조 아이템이었다. 해외 세관에서는 그 안에 든 질소인가 이산화탄소 때문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비행기에 실어도 되는 안전한 물건이라고 한참을 길게 영어로 설명했었다.

그렇게, 내가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걱정하던 그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그런데 나는, 아직도 ‘콜드 워’의 사랑을 꿈꾸다니. 서로 사랑하지만 같이 있으면 의심하고 괴로워지는. 하지만 헤어지게 되면 전쟁터를 뚫고서라도 다시 만나는. 그러다 같이 죽는. 로맨스라고 하기엔 너무 비극적인 사랑을 나도 모르는 사이 동경하고 있었나.


슬픈 노래만 자주 불러도 인생이 슬퍼진다고 누가 그랬는데, 죽어서야 함께하는 지독한 사랑을 동경하고 있었다니. 그러니 매번 헤어지고, 결혼해서도 헤어지고 있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 억지로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의 해피엔딩을 믿으라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다음 사람도, 그 다음 사람도 목숨이 다할 것처럼 열렬히 사랑하다 아프게 헤어지려나? 내게 진짜 사랑이란 해피엔딩이 없는 것이므로. 이 어두운 운명의 쳇바퀴를 바꿀 수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어쩌면 사는 게 많이 버거워 누가 정말로 좋아지면 함께 그만 살고 싶은 건지도. 그럴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확실히 날 사랑하는 거라고. 그렇게 왜곡된 조각을 이제껏 맞춰온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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