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페셔널 선생님
작년 여름부터 단골이 된 미용실이나 최근 다니기 시작한 필라테스에 갈 때마다 드는 고민이 있다. 바로 나를 ‘아가씨처럼’ 대한다는 거다. 물론 아이 둘 있는 아줌마란 사실을 내가 말하지 않아서다. 하지만 보통의 애 키우는 엄마라면 오기 힘든 시간에 머리를 하러 온다거나 오피스텔에 혼자 살며 같은 건물 필라테스를 온 것이라 말하면 그럴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요즘 필라테스를 가면 내 이사가 주요 화두인데 강사분이 “거기 가족 단위로 거의 사시죠?” 하며 혼자 사는 사람은 잘 없지 않냐고 물었다. “저도 가족이 있어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혼 소송부터 시작해서 아이들과 떨어지게 된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아 짧게 “네”라고 하고 넘어간다. 아니, 넘어가길 바란다. 가끔은 거기에 추가 질문이 이어져 계속 곤혹스러워진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 ‘언제까지 혼자 사는 여자인 척해야 하지?’하는 생각이 든다.
미용실도 마찬가지다. 꾸미고 나가기 좋아하는 나답게 모임이 있으면 드라이를 하러 자주 가는데 매번 고데를 예쁘게 말아주시는 디자이너분께 “저 사실 애엄마에요”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나중에 애들이 오고 손잡고 같이 머리 자르러 가면 얼마나 깜짝 놀랄지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이번에 옮긴 학교에도 소송 중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별로 자랑스러운 얘기도 아닐뿐더러 첫인상부터 낙인이 찍힐까봐 걱정도 되었기 때문이다. 첫날 부임 인사 때 다섯살 자매쌍둥이를 키운다고, 육아시간을 쓸 거라고만 말씀드렸다. 만 다섯 살 이전의 아이를 키우는 교원은 하루 최대 두 시간의 육아시간을 쓸 수 있다.
학년 및 업무 분장 발표가 나는 날 아침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반 아이들 하교 후 돌봄 교실에 내 교실을 빌려주면 다른 업무는 없는데 그렇게 해 보겠냐고 물으셨다. “뭔진 잘 모르겠지만 안 해봤으니 한 번 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큰 학교다 보니 업무에 비해 선생님 수가 충분해 이런 자리도 있는 듯했다. 그 날 오후 업무분장 발표 때 통화한대로 돌봄연계교실을 배정받았다.
며칠 전 이전 학교에서 가져온 짐을 새 교실에 정리하고자 출근을 했었다.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이전까지 쓴 육아시간을 기록해서 내라고 메세지가 와 있었다. 육아시간은 아이 한 명당 쓸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쓴 기간을 확인해두시려는 것 같았다. ‘올 것이 왔다’ 싶었다. 5살 쌍둥이의 육아를 배려해 업무도 없게끔 해주셨는데 나는 당장 아이들이 함께 없는 관계로 육아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작년 8월부터 남편이 육아휴직을 들어가면서 이전 학교에서도 같은 고민을 했었다. 나라에서 아이를 돌보라고 준 육아시간을 아이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짐짓 모른 체하고 써도 될까 하고.
그때부터 양심적으로 육아시간 없이 풀근무를 했고, 새 학교에서도 그 마음은 똑같았다. 작년 7월이 마지막으로 적힌 육아시간 사용대장을 들고 교무실로 내려갔다.
“교감선생님, 실은 애들이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면서 시댁에 데려가 거기서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는데요. 여기 근처 어린이집에 지금 자리가 없어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런데 자리가 나면 바로 데리고 올 거에요.”
걱정했던 것처럼 언짢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다른 사람도 육아 시간 써야 할 사람 있는데. 그럼 지금은 육아 시간 안 쓴다는 거야?”
“네. 그런데 자리가 생기면 또 바로 다녀야 해서요.”
아직 몇 번 보지 않아 안면도 채 익지 않은 그분 앞에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겨우 문장을 마쳤다. 다행히 또 금방 풀어지셨다.
“어, 그래. 알겠어.”
거짓으로 아이가 있는 것처럼 육아시간을 쓰지 않아도 됨에 마음이 한 결 가뿐해지고 교감선생님께도 감사해졌다. 교실로 돌아와 이전 학교 원어민 선생님에게 이 이야기를 톡으로 했다.
‘I didn’t want to use it fraud.’
육아시간을 거짓으로 쓰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I know. No hookie.’
‘땡땡이 안치겠다는 거네. 알아.’
‘Such an honest person lol’
정직한 사람이라며 셀프칭찬을 했다.
‘Well, fits your MO(Modus Operandi)’
‘그래, 그건 네 ‘작업 방식’이지.’ 어려운 라틴어를 써가며 ‘너는 역시 너구나’하는 의미로 말을 해주었다. 나를 오랫동안 봐온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언젠가 교감선생님이 내 이혼에 대해 알게 될 날이 올 수도 있다. 사실 그 이후에 교무실을 갈 일이 있었는데 교감선생님이 두꺼운 안경알 뒤에 찢어진 두 눈으로 레이저를 발사하는 것 같아 눈치가 많이 보였다. 그게 그냥 내 기분이었는지, 아니면 교감선생님이 그 후 내게 안 좋은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혼이 뭐 내 잘못인가? 굳이 드러낼 필요도 없지만 애써 가릴 생각도 없다. 떳떳이 하루하루 열심히 근무하고, 우리반 아이들 잘 챙기며 부끄럽지 않게 보낼 테다. 그래서 내일은 빨간날이지만 학교에 간다. 준비물은 학부모에게 어떻게 알려주며, 선생님은 이런 거 저런 거 준비하셨는지 다른 출근한 분에게 여쭤보려고. 교실 안에 재활용함이 따로 없던데 종이 쓰레기 같은 건 보통 어떻게 모았다 버리시냐고. 신발장은 어디 있고 교실 안에서는 덧신을 신는지 안 신는지...... 새 학교라 모르는 것 투성이고 하나하나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목마른 내가 우물을 팔 수밖에. 그렇게 난 직장에서 부끄럽지 않은 교사로서의 1년을 또 준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