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by 이주희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간 살아온 세월이 빚은 자기의 생김생김을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일 테다. 요즘 아무도 나를 보지 않을 때, 특히 혼자 차를 타고 운전석 문을 닫노라면 그 순간 잠시 백미러가 내 얼굴을 관찰하는 듯한 착각을 한다.

그 이유가 긍정적인 것이라면 참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보다는 길어지는 소송에 지쳐가는 내 모습이 하루하루 더 잘 느껴져서인 것 같다. 요즘 나의 표정은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화남 그 사이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다. 입꼬리는 처지고 눈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올해 내 나이 서른아홉, 이혼한 사람들은 얼굴에 그 흔적이 남는다는데 얼굴에 책임을 질 마흔 살이 되기도 전에 ‘이혼의 그늘’이 이미 드리워지기 시작한 건 아닐까?

여자로서의 매력은 또 어떤가? 매 달 몸이 축날 정도로 많은 양의 혈액을 밖으로 내뿜는 자궁의 기능을 ‘미레나’로 묶어두긴 했지만, 이제 곧 그 움직임이 한 날 멈추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눈에 보이는 노화를 없애기 위해 부지런히 피부과 정기권을 끊고 관리를 받지만, 보톡스 맞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듯 한 건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인 것 같다.

언제까지 꼬마들 앞에 서서 친절하게 글의 중심 생각 찾는 법을 알려줄 수 있을지도 고민하게 되는 중년의 시기가 왔다. 출산을 하고 들어갈 생각이 없는 뱃살은 애저녁에 ‘이제 아줌만데’하며 포기를 했지만, 혹시나 미래에 정말 내 운명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관리하지 않은 퍼진 아줌마’로 보이긴 싫어 다시 필라테스를 열심히 해 본다.

사람들을 만나면, 의례히라도 눈웃음을 지어본다. 혼자 밥을 먹고 주인 분께 계산을 할 때에도. 좀 더 사람들과 어울려야겠다. 내가 내 문제에 골몰하느라 미소 짓는 밝은 표정을 영영 잃어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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