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의 그 몇 마디

첫 이혼 기일(2)

by 이주희

남편과 내가 다투는 두 가지 큰 쟁점은 재산과 양육권이다. 지난번에 재산 위주로 썼으니 이번엔 그날 있었던 양육권에 관해 오고 간 얘기들을 써 보고자 한다.


4월 초부터 아이들과 간간히 해오던 영상통화마저 완전히 끊은 것에 대해 그 인간은 이렇게 설명을 했다.

"아이들과 통화하며 어린이집에서 배워온 시쳇말 같은 걸 가지고 애들에게 무슨 일이냐며 사사건건 제 흠을 잡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럼 엄마가 10개월 동안 아이들 실물을 못 보고 끽해야 3분짜리 영상 통화를 하는데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게 걱정이 되지, 그럼! 둘째가 돌이 겨우 지났을 때 '엄마가 뛰어내리려고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또박또박 말할 정도로 애한테 주입해 놓고 애가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니 양심이 찔렸겠지! 애들 정서를 생각하기보다 자기 소송 이기기에 급급한 이 아빠라는 글자가 아까운 놈아.


"원고는 저에게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했고 아파트 입주자 카페에 유아용 매트 시공에 대해 묻는 글을 올려 저는 아이를 탈취당할까 봐 불안했습니다."

세상에, 그는 내가 새 아파트 커뮤니티에 전체 매트 시공 문의글을 올린 것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애들과 영상 통화는 하루 스무 번을 걸어도 단 한 번도 바꿔주지 않으면서. 사람 감시하고 옥죄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엄마가 애들이랑 같이 살려고 집 전체 바닥 매트 알아보는 게 뭐가 어디가 어때서? 그리고 순서가 바뀌었잖아! 남편이 아이를 안 보여 주기 시작한 건 4월 8일, '왜 시도 때도 없이 영상 통화 거냐?'라며 짜증을 팍 낸 후 갑자기 일절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리곤 온 시댁 식구들 모두 내 전화를 차단해 버렸다. 뭐가 마음에 걸렸으려나? 자기가 매주 시댁에 내려가서 애들 케어하지도 않는다는 걸 내가 아는 게 싫었겠지. 자기도 주말밖에 대구로 못 내려가면서 일요일 아침에 거기 안 있고 서울 집 문이 잠겼다고 전화한 주제에.


그렇게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후 애들이 잘 있는지,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너무 걱정된 나머지 내가 애들 다시 데려가겠다고 한 게 5월 직전이었는데. 말의 앞뒤를 바꿔도 거짓말이 된다는 걸 모르나, 이 인간은? 거짓말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 보니 역시 소시오패스인가? 그리고 엄마가 아이 데려가는 걸 두고 '탈취'라니! 무슨 당치도 않는 말을. 판사가 오기 전에 내가 애들 태어나고 그간 안 준 생활비에 대해 얘기할 때도 '준 증거가 있다'며 적반하장으로 통장을 털어보자는 둥 당치도 않는 소리를 씨부렸다. 신성한 법정이 무섭지도 않으신가 보오. 지옥에 떨어져도 상관없나 보지? 통장에 네가 보내준 생활비 딱 한 번 있을 텐데, 3년간 그걸로 퉁쳤다고 할 생각이신가? 그걸로 3년 생활비 줬다고 할 셈인가?


판사도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는 표정을 하고 앉았다가 남편 놈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말을 시작했다. 중간에 끊고 싶었으나 최대한 참은 티가 역력했다.

"지난 가사 조사 이후 면접 교섭이 이루어졌으면 참 좋았을 텐데요. 이게 왜 이 당시에 면접 교섭이 안됐죠?"

내게 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내가 대답했다. 그런데 사실 그 질문은 누구보다 내가 재판부에 묻고 싶은 것이었다.

"제가 가능하면 바로 임시 양육부터 바로 하겠다고 해서요."

그래, 난 그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 그랬어도 면접 교섭은 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누가 할 소리. 2차 가사조사가 2월이었는데, 4개월 동안 재판부는 도대체 뭘 하셨어요?


"원고 측, 아이를 지금부터라도 데려가 키우고 싶다고요?"

"네."

기나긴 남편의 온갖 궁상스러운 말 끝에, 내게 발언 기회가 돌아왔다. 나는 숨을 한 번 가다듬었다.

"대구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시부모님은 칠순 중반이 넘으셨고, 큰 수술도 많이 하셔서 몸이 안 아프신 데가 없습니다."

시어머니 척추 수술 한 번, 시아버지 심장 수술 두 번.

"아닙니다. 저희 부모님 양쪽 다 건강하십니다. 건강하시구요. 애들 고모가 같이 거주하면서 육아를 하고 있습니다."

형님이? 그 형님이? '자신은 절대 아이 못 키운다'라고 했던 남편의 일곱 살 많은 직업 불명의 여자가? 역시 시부모님만으로는 육아가 감당이 되지 않았구나. 중간에 끼어드는 남편을 이번엔 판사가 제지했다.

"원고 측 발언하고 있으니 끝까지 들으세요."

이쯤 되면 판사도 남편의 행동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게 틀림없다.

"..."

나는 다시 내 얘기로 돌아와 육아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점을 어필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저와 없어 쓰지 않고 있지만 만 5세 이전 아이를 키우면 하루에 두 시간 육아시간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매일 두시 반에 퇴근이 가능합니다. 직장도 집에서 차로 오분 십분 거리로 가까워져 이제 아이를 키우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

판사도 조정 위원들도 모두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데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고모가 그 집에 있다고?

별일 없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늙은 시부모만 있는 것보다 낫겠지, 아니 어쩔 수 없었겠지, 잘 있을까, 그래도 다행이다. 늙은 시부모만 있는 게 아니라 젊은 고모가 같이 지내서.


하지만 그날의 결과는 조정실에서 느꼈던 분위기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임시 양육권은 저쪽으로 결정되었다.

"원고 측에서는 이의가 있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이들 육아의 연속성을 고려할 때 임시 양육은 피고 측에서 우선 지금처럼 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하지. 당신이 생각해도 이의가 있을 만하다니 그것 참 퍽 다행이네요.

그리고 임시 면접교섭 명령을 통해 조속히 아이들을 보도록 하라고도 덧붙였다.


이까짓 두 가지 결정받는 데 단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내가 처음 소송을 시작한 작년 9월로부터 무려 9개월이 지난 올해 6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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