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며 화내지 않기
어제가 아이들 네 돌 되는 생일이었다. 애써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들 얼굴이 아른거려 죽겠다. 작년 동네 키즈카페에서 세 돌 생일 축하 케이크에 초를 끌 때만 해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을 보지 못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한 친구는 아무리 우울증이 심해도 스스로 죽을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나도 동감한다. 그래도 난 과정을 낱낱이 생각하기보단 결과를 목표에 두고 실행에 과감히 옮기는 'doer'의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오늘은 19살 때 멋모르고 한 쌍꺼풀 수술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진주의 '현대 의원'이라고 말하자면 2001년 당시 이미 경남은 말할 것도 없고 저 서울에까지 우리나라 쌍꺼풀 만드는 손기술 최고로 소문이 나 문 열기 전 새벽부터 줄을 서는, 이전에는 산부인과였으나 어쩌다 보니 몇십 년간 오로지 쌍꺼풀 수술만 하게 된 곳이었다. 고속버스 진주 터미널에서 내려서 도보권이었으나 가는 길에 같은 간판이 두 개나 있어 진짜가 어느 건지 모르는 사람들을 현혹시킬 만큼 유명한 병원이었다.
비용은 단돈 27만 원. 서울 압구정에서는 100만 원을 호가하는 수술비용에 비해 엄청나게 저렴함이 틀림없었다. 나도 아침 일찍 그곳에 도착했는데 벌써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긴 줄을 보고 정말 유명한 곳이 맞긴 맞구나 싶었다.
"고등학교 졸업 기념으로 한다고? 난 이번이 재수술이야."
기다리다 지루해진 내 뒷 아주머니가 말을 붙였다.
"여기 진짜 잘해. 소문 듣고 왔어? 근데 이제 여기 의사도 나이 많아서 이제 좀 있으면 더 못할지도 몰라. 그전에 재수술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런데 여기는 상담 같은 건 없다고 했다.
"들어가면 의사가 딱 보고 눈 생긴 거에 맞게 알아서 해 준다니까. 근데 진짜 이쁘게 잘해."
기다리다 보니 해는 어느덧 중천을 넘어가고 결국 내 차례가 왔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수술실로 들어가니 수술복을 입은 노의사와 간호사 두 명이 나를 맞았다. 역시, 그 아주머니 말이 맞았다. 의사는 내 눈 위에 사인펜으로 슥슥 선을 그리더니, 이제 수술대에 누우라고 했다.
"이 눈은 지방이 많아서 지방 좀 빼내고 얇게 해야겠네요."
진짜로 상담이라고 할 게 하나도 없었다.
"자, 마취제 들어갑니다."
주사로 양 눈두덩에 두 번을 맞았다. 세상 처음 느껴보는 아픔이었다. 이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와, 생각보다 너무 아픈데?'
이렇게 아픈 줄 알았다면, 한다고 안 했을 거라는 생각. 하지만 그런 감상에 젖어있기도 전에 다시 칼로 눈 위 살을 찢는 2차 습격이 시작되었다.
'스윽 스윽 슥'
마취가 되어있긴 했지만 칼의 느낌이 생생히 느껴졌다. 세 번의 칼질이 지나고,
"다 되었습니다. 약 타 가세요."라는 간호사의 말과 함께 내 순번이 끝났다. 정말 다 보태서 1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아픔을 느끼고 비틀거릴 새도 없이 다른 간호사 분은 이미 다음 사람 순번을 부르고 계셨다.
이렇게 절개법으로 만든 쌍꺼풀은 한 달은 퉁퉁 부어있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서울에서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어느 정도 티가 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이제는 사람들이 내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수술한 지도 잘 모른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잘 되었다.
그때 내가 쌍꺼풀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자연스러운 예쁜 눈은 없었겠지.
귀를 뚫고, 쌍꺼풀 수술을 하고, 라섹 수술을 하고, 리쥬란 힐러를 맞고...
이런 게 모두 더 예뻐지고 편해지려는 욕심에 한 거지만
이 중
그 모든 것의 실재적 아픔을 미리 충분히 알았다면,
그래도 난 했을까?
이혼이라고 뭐 다르랴. 마찬가지다.
이렇게 길고 힘든 건 줄 알았다면
그러면 안 했을까.
하지만 그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시작한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칼을 댄 눈이 쌍커풀이 예쁘게 지며 아물어 가듯이, 이혼도 마무리를 지을 때가 되었다.
그리고 어제 나보다 어리지만, 현명한 동료 작가에게서
정신이 번쩍 드는 충고를 들었다.
시작한 일은 그래도 마무리를 잘하는 게 좋겠죠?
맞다. 맞는 말이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소송을 시작했으니 끝을 볼 일이다.
그래서 내가 또 '독한 년' 소리를 언젠가 듣는다 해도.
돌아보며 화내지 말자.
다 잘 되려고 그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