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념 대신 애도를
아이들과의 영상통화를 걸어도 안 받는다고 남편이 우기길래 지난주는 일부러 목요일부터 내가 매일 전화를 걸었다. 목요일 금요일에 걸쳐 세 번이나 걸었는데 세 번 다 받질 않았다. 토요일 아침에서야 겨우 연결이 되었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오물오물 사탕을 먹는 것 같아 물어보니 역시나 젤리라고 했다. “밥은?” 하고 물었더니 소고깃국에 먹었다던가. 그런데 갑자기 둘째가 안 하던 소리를 했다.
“엄마 그때 창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했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 속에서도 대체 무슨 소리인가 이해하기 위해 뇌 속을 뒤적거렸다. 남편이 2019년 봄에 내가 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지희가 그대로 읊는 모양새였다. 가사조사를 지난 2차에 종결하며 “새로 부모 조사가 시작되면 아이들을 법원에 데려와야 한다”고 했던 조사관의 말이 생각났다. 그가 지희에게 “너희 엄마가 그랬었다”라고 세뇌를 시킨 모양이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는 게 그때 지희는 고작 돌이 좀 지난 아기였고, 또 그런 일은 애초에 일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여성이 죽어서 시신이 되면 살인사건인 경우에 누가 죽였는지를 경찰 내부적으로 적게 되어있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선 살인자 목록에 ‘남편’ 혹은 ‘배우자’라는 분류가 없다고 한다. 이수정 교수의 [범죄영화 프로파일]에 따르면 어림잡아 한 해 70명에서 80명의 여자가 남편에게 맞아 죽는데도 말이다. 경찰에 신고를 하면 뭐하나.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도 가정폭력사건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데. 내 경우에는 경찰의 권고로 남편을 피해 밖으로 나간 걸 두고도 육아를 내팽개치고 집을 나갔다는 식으로 남편이 반소장에서 공격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친정에 이런 속사정을 어렵사리 말해도 ‘출가외인’이라는 케케묵은 인식이 아직도 분명히 존재했다. 2018년에 남편의 그간 폭행 건을 모두 모아 첫 고소를 하러 경찰서에 갔을 때 “그러지 마라”고 가장 말린 사람은 다름 아닌 친정 아빠였다. “이 남자가 나아지지도 않고 같이 집에 있는 게 너무 무섭다”고 해도 “그래도 네가 애 엄마지 않느냐”며 참고 지내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계속 그렇게 살 바엔 차라리 죽고 싶었다.
잘 살지 못하고 있는데 앞으로 나아질 거란 희망도 보이지 않아서 죽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도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서 후회는 없다. 처음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지 정확히 3년 후, 가정폭력상담소에서의 집단상담과 병원 통원을 포함해 총 다섯 번의 상담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아침 아이들을 차 뒷좌석에 태우고 어린이집을 가려던 내게 “씨발년아!”라고 동네가 떠나가게 외치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그런 말을 들으며 클 바에는 내가 둘 다 홀로 키우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작년 현충일에 별거를 해 나온 후 종종 이런 일로 힘들기도 하지만 이제 죽고 싶은 마음은 없어졌다. 남편은 지희가 그런 말을 하자 제 발이 저렸는지 이내 영상통화를 끊어버렸다. 기가 찼다. 한때 내가 믿고 의지했던 젊고 믿음직한 그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 파렴치한으로 변한 그 앞에서 원래 그렇지 않았던 내 남편에 대해 묵념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양귀자의 [모순]에 이런 문구가 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액자 안에 우리의 시간을 걸어놓으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언제냐고 누가 물어보면 나는 늘 지금이 가장 낫다고 말했었다. 이전에는 적었던 ‘나이’가 늘어나고, ‘경험’도 생기고, 그래서 실수를 덜하며 하루하루 보낼 수 있지 않은가 하여. 나의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다. 그 남자는 자식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히려 그 어린것들을 소송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소인배로 전락해버렸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천하의 쓰레기라고 해서 그간의 내 결혼 생활은 모두 헛된 것이었다고 해야 할까. 순간순간 존재했던 좋았던 시절은 좋았던 대로, 아름다웠던 것은 아름다웠던 대로, 지저분하고 잊어버리고 싶은 부분은 또 그대로 인생에 두면 뭐 어떠한가. 그를 짐짓 죽은 사람으로 생각해 묵념을 해버리고 잊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그의 사람 되지 못함과 염치없음을 애도하고, 좋은 아빠가 되기에 너무 부족한 그 모습을 애도하고, 그가 그렇게 변할 줄 모르고 결혼이라는 예감에 몸을 맡겼던 과거의 나를 애도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세상사 마음대로 안된다고 어그러진 것들을 모두 없는 셈 치자면 나에게 남을 건 별로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이만큼 어려운 일이 또 생긴다 하더라도, 거기서 무언가 깨닫고 배우며 더 나은 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그런 내가 되기를.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가만히 가만히 바라본다. 그 어려울 일 중 하나가 나와 떨어져 지내며 힘들었을 딸들이 가져올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