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입장에서 생각하기

by 이주희

본의 아니게 구약식 벌금형을 받았다. 이삿날 부모님을 아파트 주차장에 내려드린 걸로 남편이 살지도 않는 집이지만 어쨌든 접근 금지 임시 조치 위반, 그리고 합법적으로 전세 계약서랑 신분증 다 보여주고 내 집 비밀번호 바꿨다고 재물 손괴죄가 성립한단다.

문제는 검찰에서 학교로 통지가 와서, 이것저것 서류를 준비하느라 좀 바빠졌다는 점이다. 방학 첫날 아침에 법원에 가서 피의자 신문 조서를 뗐다. 어떻게 된 일인지를 기술하는 경위서도 썼다. 변호사는 벌금 액수를 듣더니 정식 재판을 청구해보자고 했다. 사실 비밀번호 바꿀 때는 미리 그에게 이런 행동이 법적으로 괜찮은 지 확인도 했었다.


벌금형이라 해도 어쨌든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 범주로 따졌을 때 '범죄자'에 속하게 되었다. 사실 교육청에서 경징계 결정이 떨어져 봤자 성과급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 말고 특별한 페널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교로 공문이 날아오고 교장선생님 의견을 첨부해 정해진 기한 내에 직송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커서 그렇지. 게다가 작년에 서울시교육감 표창을 받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 표창장의 유일한 메리트가 바로 이런 징계 면제이기 때문이다.


날씨도 사람을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만들 만큼 푹푹 찌는데, 이쯤 되니 '이혼 한 번 하기 더럽게 힘드네' 싶다. "교사 생활 못하게 해 주겠다"며 버릇처럼 협박을 일삼던 전남편이 그 야심을 실제로 옮기다니, 참 그 지저분함이란!


어쨌든 그로 인해 요즘 '범죄자의 입장'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는 나 자신을 문득문득 발견하곤 한다. 예를 들면 지난주 대학 병원에 혈압 정기 검진을 갔을 때다. 갑자기 '범죄자는 병을 치료해주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해 봤다. 만일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필요한 약을 처방받을 수 없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아픈 사람은 누구든 가리지 않고 치료하겠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새삼 성스럽게 다가왔다. 동시에 치료에 앞서 환자의 귀천이나 빈부를 따지지 않는 의사 선생님들께 감사했다.

다행히 '범죄자 차별' 같은 것 없이 무사히 병원 진료를 마쳤다.


그리고 며칠 전 지난 학교에서 같이 근무한 원어민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나 내 구약식 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자 그가

"어? 나 계약상 범죄에 연루되면 안 되는데?"

라며 농담을 걸었다.

물론 웃겼다.

진짜 심각하게 '나 어떡해'하며 머리 싸매고 있었으면 그 가 그런 농담을 하지도, 내가 넘어가지도 못했을 거다. 하지만 전남편에게 참 미안하게도 그의 발악은 그냥 이렇게 식사를 하며 잘근잘근 씹어 넘길 수 있는 대화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질 못하는 걸 어떡하나? 내게 이렇게까지 하고 그가 되려 받을 화가 어떤 종류 일지, 언제 내 귀에 그 소식이 들릴지, 이거야말로 '팝콘 각'이다.


김경수 도지사는 나처럼 벌금으로 때우는 정도가 안 되어서 도지사를 하다 말고 감옥으로 갔다. 기실 정치인 중에 감옥에 가 본 사람이 안 가본 사람보다 많을 것이다. 앞으로 가게 될 사람을 포함하면 훨씬 더...

세상을 살다 보면 진짜 잘못한 사람뿐만 아니라 에먼 사람도 가끔은 법의 심판을 받는다. 이번 일로 나는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난다는 걸 피부로 알게 되었다.


나를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는 그 인간의 발악과 상관없이, 이번 여름방학 중간에 반 아이들 몇몇과 특별한 나머지 공부를 시작한다. 2학기 전면 등교를 대비해 그간의 공부가 미흡한 아이들을 데리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이 프로그램을 내가 방학 동안 자진해 나와서 한다고 하니, 부장님은 부진아를 가르쳐 봤자 아마 별로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런데 이 특별 프로그램은 아이들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사실 나 좋자고 하는 거다. 2학기 때 새로 진도를 나갈 때 앞에 배운 내용을 몰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날이 더우니 공부하고 가는 길에 시원한 간식 하나씩 손에 들려서 집으로 보내면, 내 마음이 같이 공부한 그 애들보다 더 든든할 것 같아서다. 이런 걸 한다고 내가 뭐 고매한 선생님이란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냥 난 그의 헐뜯음과 상관없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묵묵히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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