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라고 하면 나에게는 가깝게는 코끼리 뺑코, 조금 멀게는 젖병이 떠오른다. 코끼리 뺑코는 스스로 코를 푸는 힘이 약한 아기의 콧물을 입으로 빨아 당겨 빼내는 도구다. 어른이 당해도 아플 것 같아 나는 의사가 아무리 그걸 해 주라고 당부해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아이가 그 기다란 도구를 보고 기겁하며 도망가면 더더욱 할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그 과업은 늘 전남편의 몫이었다. 하지만 코를 빼는 순간에 얼굴을 움직이지 못하게 아이를 꽉 잡는 것이나, 코를 뺀 후의 설거지는 내가 자주 했었다. 그런데 코끼리 뺑코는 그 기다란 플라스틱 관 끝에 달린 새끼손톱만 한 고무 부속이 없으면 아무 힘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어느 날 그 부속이 없어지자 집안을 샅샅이 뒤지고 결국 싱크대 수챗구멍 밑에서 겨우 찾아낸 기억이 난다.
젖병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니 우선 쌍둥이를 직접 모유 수유해보겠다 했던 내 거창한 계획부터 실토해야겠다. 트윈지필로우라는 신박한 아이템을 이용해 두 아이를 동시에 처음으로 직수한 지 한 삼사십 분쯤 지났을까? 집에 와 계시던 친정어머니가
“애들이 얼마나 먹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유축해라.”
라고 한마디 하셨다. 이제 막 엄마가 된 내가 뭘 알았겠는가? 그런가 보다 하고 미리 빌려놓은 유축기로 직수대신 유축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훗날, 이 유축으로 인해 젖몸살이 두 번 심하게 왔다. 사실은 처음부터 직수를 하는 게 맞았던 셈이다. 어쨌든 그리하여 그때부터 두 시간마다 양식을 찾는 두 아기에게 부지런히 깨끗이 소독한 젖병에 모유 혹은 분유를 담아 대령하는 고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시중에 나오는 고무젖꼭지는 퍽 다양했다. 그 중 아이들에게 가장 잘 맞는 걸 찾는 데는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쓰던 그린*으로도 줘 보고 산모 교실에서 받은 외국 제품으로도 먹여보았다. 그러다 아이들이 가장 잘 빠는 젖꼭지를 찾아내었다. 그건 바로 제일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으면서도 여러모로 무난한 D 브랜드 제품이었다. 그런데 이 브랜드는 젖병도 비쌌거니와 젖꼭지 두 개들이 한 세트에 무려 만 원이 넘었다. 게다가 아기의 개월 수에 따라 그때그때 구멍이 더 큰 것으로 교체해주어야 했고, 그마저도 설명서엔 위생을 위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버리도록 적혀있었다.
수월한 수유를 위해 분유와 젖병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아이 둘이서 두 시간마다 마셔대는 젖병을 설거지하고 다시 소독하는 데는 품이 굉장히 많이 들었다. 그사이에 나는 유축도 해야 했으니 말 그대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보다 무서운 사실은 설거지를 좀 더 부지런히 할지언정 젖꼭지를 넉넉히 살 형편이 되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러던 중 아이들이 8개월 즈음 되었을 때다. 운 좋게 [쌍둥이 나라]라는 카페에서 L사이즈 중고 젖꼭지 열 몇 개를 어렵게 나눔 받았다. 사실 아이가 이로 무는 것이라 미세한 기스가 생기면 그사이에 낀 이물질 때문에 소독을 해도 개운하지 않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그중 가장 상태가 안 좋은 몇 개는 과감히 버리고 나머지는 뽀득뽀득 씻어 소독 후 사용했다. 새로 산 네 개 정도의 새것과 교대로. 아…. 그 젖꼭지를 젖병에 끼워 주며 실은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엄마 마음처럼 새것으로 주지 못해서….
그렇게 허리띠를 졸라매던 나를, 생활비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나를, 전남편이 반소장에서 ‘모피’를 사고 ‘명품 가방’을 사며 잘 먹고 잘살고 있다고 묘사한 점은 참 유감이다. 그에게서 정말로 멋들어진 가방이라도 하나 받았더라면 조금은 덜 억울했을 것 같다. 별거해 있는 동안 전남편은 나 몰래 그나마 최근에 산 건조기며 압력밥솥뿐만 아니라 내가 혼수로 해 온 오래된 냉장고까지 바리바리 싸 가져갔는데, 그렇게 꼭 따지자면 내가 사치를 한다기보단 그쪽이 유별나게 구질구질한 것 아닌가? 별거 기간 동안 내가 명품을 산 적도, 모피를 산 적도 없음은 물론이다.
이 얘기를 하며 꼭 집어 하고 싶었던 말은, 뭐니뭐니해도 내 전남편이 정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도 그때 내가 무서워서 차마 하지 못한 ‘코 뻥’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점은 지금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이제 스스로 코를 풀 수 있는 두 아이를, 내게 좀 보내라고도 말하고 싶다. 엄마와 자식을 1년이나 서로 못 보게, 천륜을 강제로 끊고 있는 그의 크나큰 죄는 내가 아니라도 언제 어디서든 갚아야 할 텐데, 진짜 어떻게 살아가려고 이렇게까지 구는지 모르겠다.
내 요즘 사주를 공부하건대 내년 인사신 삼형살이 들면 사고든 소송이든 무엇으로든 무사하지 못할 것인데 거기에 지금처럼 마음을 나쁘게 써서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는지. 정말 더 싸우기 싫고 딱 이혼만 해주면 좋겠는데 그의 몹쓸 태도가 자꾸 조금이라도 잊고 용서하려 애쓰는 내 마음을 원점으로 밀어버린다. 진짜 호되게 당해봐야 알려나? 아니, 아니, 아니지. 내가 아니라도 나쁜 놈은 천벌을 받는다는 걸 믿어야지. 아이, 참…. 소송 중 마인드 컨트롤이 이렇게 힘들다. 특히나 딸을 못보는 엄마 입장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