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주 먼 옛날 겨울 나라에 카이와 힐다라는 친구가 살았어요.
겨울 나라는 사시사철 흰 눈이 쌓여 있을 정도로 추웠지만, 카이와 힐다는 그 눈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둘은 떨어지는 눈꽃의 모양을 보는 것도 좋아했지만, 책을 들여다보며 진짜 꽃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했어요. 겨울 나라는 너무 추워 꽃이 자랄 수 없었거든요.
"언젠가 진짜 꽃을 보게 된다면 힐다 너도 같이 볼 수 있으면 좋겠어."
카이가 힐다에게 말했어요.
카이와 힐다는 집 근처 산등성이에 누워 오로라를 한참 동안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어요. 운 좋게 커다란 오로라를 만난 어느 날 밤에 힐다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어요.
"어떻게 밤하늘에 초록색, 붉은색이 생기지? 카이, 우리가 생각하는 장미꽃이 저런 색일까?"
그러던 어느 날 힐다는 눈의 여왕의 유리조각에 눈과 심장을 찔리고 말았어요.
눈의 여왕은 눈처럼 하얀 피부에 눈으로 만든 털모자와 외투를 입고 있었어요.
하얀 마차에서 내린 그녀는 힐다에게 다가가 이마에 입을 맞추며 이렇게 말했어요.
"이제 그 누구도 믿어선 안 돼."
그 후 힐다는 더 이상 겨울 나라를 아름답게 여기지 않았어요.
"이곳은 너무 춥기만 해. 카이, 네 머리는 너무 지저분하구나. 마치 새둥지 같아."
힐다는 카이와 오로라 보러 가는 일도 그만두었어요. 힐다는 점점 불평불만으로 가득해졌어요.
카이는 눈의 여왕에게 가서 원래 힐다를 되돌려달라고 말하기로 했어요. 마을 사람들은 눈의 여왕이 있는 곳은 여기보다 훨씬 더 춥고 위험할 거라며 말렸지만, 날로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힐다를 계속 두고 볼 수는 없었어요.
'영차, 영차.'
가파른 산을 넘어 눈의 여왕이 산다는 산꼭대기에 다다랐어요. 중간에 발을 헛디뎌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힐다를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고 계속 올라갔어요.
마침내 산꼭대기에 다다른 카이는 눈의 여왕이 사는 궁전을 발견했어요. 그리고는 그 호화로운 궁전이 겨울 나라와 사뭇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눈보라가 거세게 치는 바깥과 달리 그곳에는 카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기 때문이었어요.
성 안은 갖가지 꽃이 잘 가꾸어진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정원 같았어요. 카이와 힐다가 그토록 궁금해하고 보고 싶어 했던 붉은색 장미도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지요.
눈의 여왕은 겨울 나라에서 봤을 때 입고 있던 두터운 눈 외투 대신 끈이 달린 얇은 드레스를 걸치고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어요.
그제야 카이는 그곳이 '여름'임을 깨달았어요.
카이가 눈의 여왕을 보고 소리쳤어요.
"어째서 이런 따뜻한 날씨와 정원을 당신 혼자 독차지하는 거죠? 예전의 상냥한 힐다를 되돌려주세요!"
눈의 여왕은 소리 내 웃었어요.
"하하하! 인간들은 원래 서로를 믿지 못해. 난 그저 그런 마음을 부추길 뿐이야. 힐다의 온화한 마음씨는 내가 가져와 이곳을 따뜻하게 하는 연료로 쓴단다."
"혼자서 이 모든 걸 누린다고요? 그럼 겨울 나라가 원래부터 사시사철 춥기만 한 게 아니었나요?"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따뜻한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 너처럼. 내가 데려온 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의 마음씨니,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단다."
카이는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거짓말! 이 장미를 보면 힐다도 깨달을 거예요!"
카이는 다급히 장미 한 송이를 꺾었고 그의 손은 가시에 찔려 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카이는 마을로 돌아와 힐다에게 그 장미를 보여주었어요.
"힐다, 내 얘기 좀 들어봐. 눈의 여왕이 네 마음을 이용해 따뜻한 궁전에 살고 있다고. 이건 거기서 가져온 진짜 장미야."
그런데 어째서인지 분명 초록 줄기와 붉은 꽃으로 싱싱했던 장미는 눈처럼 희게 변해있었습니다.
"카이, 장미는 무슨 장미? 하하하하. 눈으로 장미 모양을 만들었니?"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눈보라를 만나 그만 눈으로 뒤덮힌 채 꽁꽁 얼어버렸다는 걸 카이가 그제야 깨달았어요.
"힐다, 나를 한 번만 믿어주면 안 되겠니? 너를 위해 저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왔단 말이야."
카이가 힐다의 손을 꼭 잡으며 눈물을 흘렸어요.
그러자 카이의 뜨거운 눈물에 닿은 장미의 겉 눈이 녹으며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났어요.
“봐, 힐다. 우리가 이야기하던 진짜 장미꽃이야.”
힐다는 신기한 듯 장미꽃에 손을 가져갔고, 그녀의 손이 꽃에 닿자 박혀 있던 유리 조각이 밖으로 튀어나왔어요.
힐다는 그제야 이전의 힐다로 돌아갔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마치 꿈을 꾼 것 같아."
카이가 가져온 장미에서 시작된 온기는 힐다를 거쳐 온 마을로 퍼져나갔어요.
눈의 여왕에게서 눈과 심장에 유리 조각이 박혔던 아이들은 하나둘씩 차례로 그 파편을 빼내었어요. 따뜻한 마음을 되찾은 힐다는 아이들이 유리 조각을 빼는 과정을 기꺼이 옆에서 도왔어요.
그러자 놀랍게도 눈보라가 눈의 여왕의 궁전이 있는 쪽으로 몰려 올라갔고, 마을에 쌓여있던 눈은 모두 녹아 없어졌어요. 겨울 나라 곳곳에서 아지랑이가 피고 한 송이 두 송이씩 예쁜 꽃이 피어났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그곳을 더 이상 '겨울 나라'라고 부르지 않게 되었어요.
카이와 힐다는 예전에 눈이 덮여있던 산등성이에 강이 흐르는 모습을 나란히 앉아 바라보았어요.
“앞으로도 널 믿을게.”
힐다가 카이에게 넌지시 말했어요. 카이는 대답 대신 힐다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어요. 들판에 이름 모를 꽃들이 빽빽이 자란 따뜻하고 아름다운 여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