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못생긴 아이

by 이주희

내기를 한다는 건 그만큼 이길 자신이 있다는 뜻일 거다.

초등학교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예쁜 옷을 입고 학교에 가기도 힘들었지만, 입은 옷과 상관없이 나는 한 '못생김'했었다. 도수 높은 두꺼운 안경을 껴 안 그래도 작은데 더 단춧구멍만 해 보이는 눈. 낮고 퍼진 코. 툭 튀어나온 입. 이런 이목구비에 어울리지 않게 광활한 이마. 여기에다 아직 십 대였는데도 존재감 확실히 내보이던 구불구불 철사 줄 같은 곱슬머리까지. 다 합치면 정말 못생겼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하루는 나만큼 못생겨서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는 비슷한 부류의 다른 아이 하나와 싸움이 붙었다. 이름은 '민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속으로 반 아이들을 '잘 나가는 애들'과 '그렇지 못한 애들'로 나누었던 셈이라 글을 쓰면서도 참 부끄럽다.

민하는 샐쭉한 표정이 되었고 무슨 말 끝에 나는,

"그럼 다른 애들한테 누가 더 못생겼는지 물어보자!"

라고 제안했다.

이때의 마음도 정말 나빴던 게, 나도 그 애처럼 친구들과 잘 못 어울리는 처지이면서도 다른 친구들은 '나보다는 민하를 더 싫어할 거’이라는 묘한 경쟁심이 있었다.

그렇게 주위 아이들에게 "민하가 못생겼냐, 내가 못생겼냐?"라는 질문을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 눈에 이 내기가 얼마나 가소로워 보였을까.

그래도 민하보다 내가 덜 아싸일거라 철석같이 믿었는데, 그 믿음은 철저히 짓밟혔다.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보면서도 "민하가 그래도 낫지..."라며 그 애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나를 쳐다보는 수많은 눈앞에서 내기를 시작하던 처음의 의기양양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지만, 결국엔 마음에 큰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민하가 그렇게 못생기이만 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조금 까무잡잡해서 그렇지, 피부결이 매끈했다. 안경을 쓰긴 했지만 파마한 머리 스타일도 괜찮았다. 나와 달리 늘 예쁘고 단정항 옷을 입고 다녔다. 나는 괜한 호승심으로 내 무덤을 판 셈이었다. 애들이 내 편을 들어줄거란 막연한 기대도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그날 크게 충격을 받은 나머지 원래도 쉬는 시간에 딱히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는 나였지만 그 후엔 아예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끔 그때 일이 떠오른다. 나는 정말 반에서 가장 못생긴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일말의 희망을 붙든 어린 시절 나에겐 참 미안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내 편을 들어 다독여주기도 어렵다. 아니면 친구들에게 다그치듯 화내며 묻던 내 태도가 문제였을까?

이혼 소송의 끝도 혹시 이런 식이 되지는 않을까 문득문득 불안해진다. 내가 뭔가 크리티컬하게 잘못한 게 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저쪽의 잘못이 크다. 그런데도 늘어지는 시간은 마치 살얼음판을 걷듯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법원이 내 편을 들어주리라 100% 확신할 수 없다. 그냥, 판결은 그렇게 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열두 살, 어린 시절의 나도 그렇게 나름대로는 굳게 그 내기를 이길 거라 믿었던 것처럼.


지금 나는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걸까?

뭘 놓치고 있는 걸까?

불안하다. 그리고 분하다.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여자'라는 점이,

2013년에야 겨우 파리에서 바지 금지법이 사라진 것처럼

모든 자식과 식구는 아버지, 혹은 큰아들에게 속한다는 이상한 호주제가 2008년이 되어서야 겨우 없어진 것처럼

그렇게 아직도 알게 모르게 작용하고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엄마'라는 이름에 모든 불가능한 초인적인 힘을 기대하는

사회의 폭력적인 통념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걸까.

그래서 육아휴직을 시작한 남편에게 아이를 맡긴 게 내 잘못이라고 가사조사관이 물었던 걸까?

남편이 육아휴직을 해도, 원래 살던 집에서 나가 작은 원룸에서 살고 있었어도, 무슨 상황에서도 엄마는 아이들을 키웠어야 한다는 건 그 얼마나 말이 되지 않는 말인가.

다음번 조사 땐 내가 그 가사조사관에게 물어야겠다.

당신은 당신 목숨이 간당간당하는데 그러겠느냐고.

그리고 그때 그랬기 때문에, 이렇듯 간절하게 되찾으려 한다고.

그런데 그렇게 말해본다고 그 사람이 내가 느끼는 바를 동감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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