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와 견우

by 이주희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이 “여성이 운동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추하며 상스럽다”라고 한 걸 아시는지? 그런 그의 생각대로, 첫 근대 올림픽에는 어떤 여성도 경기에 참여하거나 참관하지 못했다. 그다음 2회 파리 올림픽 때부터 여성의 참석은 가능해졌지만, 그 비율은 턱없이 낮았다. 근대 올림픽을 시작한 지 125년이 되는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여성 선수 비율은 역대 올림픽 중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49%였다. 아직까지 여성 선수가 올림픽 선수 중 반을 넘겨 본 역사는 없다.


같은 운동을 해도 여자 선수들의 유니폼은 눈에 띄게 섹슈얼하다. 집에 내려갔더니 엄마가 비치 발리볼 여자 경기를 보며,

"쟤넨 왜 저렇게 입고한다냐?"

하셨다. 비치 발리볼뿐만이 아니다. 배구, 체조, 육상 할 것 없이 여성의 운동복은 유독 짧고 달라붙고 천이 별로 없다.

‘엄마, 그러니까요. 왜 유독 여성만 약속이나 한 듯 몸매를 드러내는 유니폼을 입을까요?’

카메라 앞에서 여자 선수는 한 명의 프로 선수이기 전에 관습적으로 '여자'라는 껍데기를 강요받는다. 누구에 의해서? 글쎄. 남자 선수에겐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 '숏컷'의 이유를 밝힐 것을 채근당하기도 한다. 사실 이건 폭력이다.




아침에 한 여중사의 자살 얘기가 크게 보도되었다. 어김없이 또 군에서 일어난 성추행 사건이었다. 얼마 전 한 명이 죽었다고 보았는데 그새 또 한 명이 죽다니! 기사를 읽어보니 최초 신고 후 피의자와 피해자가 즉시 분리되지 않은 채 며칠을 한 공간에서 같이 생활했었나 보았다. 누군가의 괴롭힘 때문에 집을 나가보고 죽음을 생각해 본 사람으로서 그 상황에서 최선이었을 그녀의 선택이 무겁게 다가왔다. 남초가 심한 군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끊임없이 성추행 사건이 터져 나오는 건 '서로가 서로를 알고 봐 주는' 남자들의 유대의식 때문인가? 아니면 상명하복의 군대 문화 특성상 약한 자 위에 군림하는 게 몸에 스며들어 익숙해진 탓인가.


여기,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 앞에 무릎 꿇는 비열한 자 한 명 추가요! 바로 나의 전남편. 코로나니 뭐니 갖은 핑계를 다 대며 부모 조사를 안 나오려고 하더니 조사관의 '이렇게 나오시면 양육권에 좋을 게 없습니다.'라는 한 마디에 쭐래쭐래 법원 출석을 했더라.

그리고 그 '입'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뚫린 구멍으로

"전 애들 때린 적 없어요."

라는 뻔뻔한 거짓말을 시전 했다.


그 파렴치함이 나를 치 떨리게 만들었지만, 그는 어쩌면 처음부터 그냥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는지도. 상황이 불리하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할 수 있는. 여자와 아이들에게는 소리치고 욕하고 때리면서 자신보다 힘센 사람 앞에서 실실거리며 머리를 조아리는. 그 인간은 결국 그 정도밖에 안되는데 내가 괜히 이제껏 붙들고 고쳐 써보겠다고 돈 들였나 싶다. 아, 아까운 내 돈.




남자들이 공공연하게 여자의 가슴 크기와 허리둘레를 갖고 이야기하듯, 남자들 '그것'의 길이와 단단함을 놓고 여자들이 말로 비교한다고 하면 어떨까. 여자의 즐거움을 위해 ‘그곳’의 크기와 모양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모든 남자 선수들이 딱 달라붙는 쫄쫄이만 입을 수 있게 강요한다면 그건 또 어떨까? 혹시 또 모를 일이다. 아주 먼 훗날 올림픽 참여 선수 중 대다수가 여성일 땐 그런 역현상이 나타날지. 세상에 정해진 게 어디 있나? 미인의 기준도 계속 변하는데. 물론 수십 세기에 걸쳐 약자였던 여성들이 갑자기 득세한다고 해서 그간 받았던 수모 그대로 돌려줄 성정은 아니지만 말이다.

내일이 칠월 칠석인데, 견우가 직녀가 이 글을 본다면 뭐라고 하려나? 사랑하기도 모자란 시간에 너네 왜 그렇게 각 세우고 서로 헐뜯기 바쁘냐고 할까. 아, 일 년에 한 번밖에 못 보더라도 원 없이 정답기만 한 너희 둘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구나. 그런데 견우야 직녀야, 여와 남이 함께 발 붙이고 살아가기엔 이 지상에 정리해야 할 문제가 아직 태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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