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인생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이란,
안녕? 세어보니 너를 처음 본 지 무려 20년이 넘었네. 시간이 참 쏜살같다. 그때가 우리 고2 때던가. 넌 새침하고 차가워 보였지.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가까워질 거라곤 처음엔 몰랐던 것 같아. 하지만 꼭 다문 두 입술에서 ‘야무짐’이 느껴졌다고 할까? 그래서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
고2에 이어 고3 때도 같은 반이 되며 우리는 더 가까워졌지. 총각도 아닌 남자 담임선생님의 극성팬 중 하나가 너였던 거, 기억나?
“우리 담임은 ~할 때 참 멋있어.”
라고 네가 호들갑을 떨면 난 옆에서 심드렁한 목소리로
“그러게.”
라며 건조하게 맞장구를 쳤었지. 세상에 아는 남자가 몇 안 되는 여고 시절이었네. 돌아보니 그것도 다 추억이다.
고3 올라갈 때가 되어서야 야자에 보충수업이 생기고 모의고사를 보며 우리 학년 애들은 모두 혼돈에 빠졌지. ‘하나만 잘해도 대학 간다’라는 정부의 말은 입시를 고작 1년 남기고 거짓말이 되어버렸으니까. 그해 수능을 코앞에 두고 터졌던 911 테러만큼 내겐 너의 빛나는 모의고사 등수가 찍힌 종이가 기억에 남아. 묵묵히 열심히 하던 네가 전교 10등 안에 들어왔을 때, 한편으로 무척 흐뭇하고 또 한편으론 같이 서울로 대학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얼핏 했던 것 같다.
묵묵히 공부하고 일과를 보내는 우리는 재미라곤 별로 없는 모범생이었어. 난 그때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어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최소한의 생명 유지 활동을 제외하곤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었어. 그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없었는데 너와 그 힘든 시간을 지나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친구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게 이루 말할 수 없이 신기해.
고등학생 때 내 연애사도 알고, 초임 교사 시절 너무 좋아했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청주에 있던 너를 찾아간 일도 있고, 소송 중인 전남편과 일어났던 일도 잘 아는 너. 남편의 폭력이 한창 심할 때 내가 걱정돼 주말에 일부러 서울로 나를 보러 와준 너. 지금 난 네 교수 임용을 축하하며 글을 쓰고 있지만, 어쩌면 지난 20년간 서로의 인생을 목격해준 사실 만으로 무척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혼을 시작하며 더는 내 인생을 가까이에서 보아주는 이가 없다는 게 가장 슬픈 것 중 하나였는데, 바보같이 나에게 네가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구나.
부모님의 도움 없이 혼자 길을 찾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너.
허리띠를 졸라매 가며 석박사를 모두 마친 후 세종시의 한 국책연구기관에 취직한 너.
그리고 드디어 오랜 너의 꿈이었던 ‘모교 출신 교수님’이 된 너. 너무 축하해! 30대 교수라니 너무 젊다, 야!
타향에서 외국어로 공부하고 학위 따느라 얼마나 힘들었니? 직장에서 서울의 특정 대학 출신끼리 파벌을 지어 널 배척할 때, 그 속이 어땠니? 나였다면 해낼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좀 더 큰 소리로 자랑해도 돼. 넌 너의 꿈을 이뤘다고. 그간 네가 해 온 노력은 이런 거였다고 말이야.
부디 너와 내 삶에 지금까지처럼 복이 있길. 그리고 인생이란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서로를 지금까지 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볼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바라. 다시 한번, 축하해.
너의 오래된 친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