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땠어?”

사소해 보이지만 사소하지 않은 일

by 이주희

영주가 최근 새로 사귄 남자 친구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남자 친구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걱정해주지 않는다는 점도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평소 다른 사람을 위로해 온 방식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크면서 살가운 보살핌 없이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며 자란 나답게,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일은 매번 어려웠다. 문제의 본질에 함께 공감해주기보다 개선점을 찾아내는 냉담한 이과생의 문제 해결 방식이랄까.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는 여자의 하소연에는 ‘해결’보다 ‘공감’이 우선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여자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의도적으로 맞장구를 치고 눈을 맞추며 고개를 많이 끄덕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이 바로 지금 영주 남자 친구가 보이는 모습은 아니었을까? 자신이 이렇게 힘들다고 공을 들여 설명하면 그녀의 남자 친구는

“힘내. 좋은 일 생겨라!”

라며 그 자리에서 입에 발린 응원을 해 준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고는 곧바로 평소와 같이 자기 이야기로 돌아간다고. 그래서 그와 살면 너무 외로울 것 같다고 그녀는 말했다.




나의 경우에는 영주의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 답을 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녀가 겪는 일에 아픔을 느끼면서도 가끔은 그 마음을 굳이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늘 그녀가 괜찮은지, 어떤 기분인지를 알고자 촉각을 곤두세웠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냥 걱정이 되어서.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내 위주의 말은 자연히 줄어들거나 적어도 어떤 말을 하려다가도 당시 상황에서 던질만한 내용 인가를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연 내가 보인 태도가 얼마나 적절하였는지 그녀에게 묻는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 별것 아닌 일에 유난스럽게 같이 호들갑을 떨어주는 건 아마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하는 일 중 하나이므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의 속도 모르고 자동 반사처럼 파이팅만 내뱉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비누를 싼 종이에서 꽃향기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서 비린내가 나듯,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은 숨기지 않아도 그 사람에게 가 닿는 거라고 그렇게 믿으면 안 될까? 그녀의 속마음이 어떤지 이번 기회에 한 번 물어나 볼까?

최소한 나란 인간은 누군가의 고민에 입에 발린 소리로만 위로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너무 힘들어 곡소리가 절로 날 때, 누구에게든 명절날 덕담보다는 조금 더 진심이 담긴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면 실은 내 안에 이미 답이 있는 뻔한 일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더 힘이 나지 않을까?



멋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작은 일, 하루하루, 그리고 그에 수반한 자질구레한 감정은 그보다 큰 어떤 목표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치부했었다. 그래서 시험 후 맞춰보는 행위가 부질없었고, 담임 선생님을 좋아하는 일도 HOT를 좋아하는 일도 다 '쓸데없는 일'이었다. 난 그냥 매일의 공부량을 탑처럼 잘 쌓아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불혹에 가까워서야 인생은 결국 그 하루하루의 모음이란 걸 깨닫는다. 내가 맞닥뜨리는 수많은 자잘한 문제와 그로 인한 다양한 감정이 결국 ‘나’이자 ‘내 인생’이라는 걸. 그리고 누구나 그렇게 사소한 인생의 조각들을 서로 보아주고 이야기 나누는 사람이 최소한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더 잘하고 싶다.

“오늘 어땠어?”

라고 묻고, 들어주고, 내 하루도 홀가분히 시시콜콜하게 털어놓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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