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불행한 길은

by 이주희

정말 오랜만에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친구 J를 만났다. 좀 오래 서울에 있을 거라더니, 알고 보니 둘째를 임신해서 출산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 거였다. 그녀는 첫째 아들을 임신했을 때 못지않게 커진 배를 안고 나타났다. 반가웠다.

어떻게 둘째를 가지게 되었는지, 요즘 내 소송은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쉼 없이 수다를 떨다가 둘이 공감하는 지점이 생겼다. 육아는 ‘아이 수 더하기 1’에 해당하는 수의 어른이 필요하다고. 더하기 2 정도가 되면 더 편안하고 말이다. 특히나 일하는 엄마라면 그랬다. 알고 보니 그녀의 둘째 임신 배경엔 월 백만 원짜리 미얀마 헬퍼가 있었다. 그녀가 함께 살며 첫째 아이를 보는 것부터 집안일을 거의 다 해 주었다고 했다.

친구와 얘기하다 보니 내 이혼 소송은 진흙탕 싸움을 넘어서 개싸움이 된 정도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보다 더 끔찍한 게 있었으니, 전남편이 재산 욕심 때문에 이번 소송이 모두 끝나고도 그가 다시 항소해 올 수 있겠다는 상상이었다. 미친 듯이 돈을 추구하는 그 사람 특성상 전혀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에게 양육권이 온다 해도 그가 추후 아이들 양육 문제로 나를 계속 괴롭힐 가능성도 상당히 커 보인다.

그럴 때마다 솔직히, 모두 포기해버리고 싶은 유혹도 든다고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모두 잊어버리고 싶다고. 양육비만 보내주고 될 대로 되라지 하며 모르는 척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전남편은 여전히 나와 아이들에게 저지른 과거에 대해 아무런 잘못도 느끼지 못하겠다고 한다. 지난 부모 상담 때 그는 오히려 자신이 억울하다고 했다. 그는 아마 정말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상 나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부부가 이혼할 때 서로를 용서해야, 자식에게 해가 가지 않는 거란 걸 나도 최근에야 알았다. 감정의 찌꺼기가 남으면 그게 나중에 다 아이들에게 간다고, 용서란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 딸들의 건강한 앞날을 위해서이기도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너무도 뻔뻔한 가해자의 민낯을 옆에서 직접 보고 있노라면 ‘내가 과연 그런 성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혼 소송은 힘들다. 누군가 이혼을 한다면 꼭 협의로 끝내라고 일러주고 싶다. 소송은 원인 모르게 우는 아이를 두고 앉아있었다고 해서 ‘엄마가 아이를 제대로 안 봤다’며 CCTV 녹화본을 상대가 법원에 제출하는 그런 일이다. 피고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지어낸 수많은 이야기에 일일이 대응해야 하는 일이다. 때로 직장에도 알려져 사적인 일을 모두 말할 수밖에 없어지는 그런 성가신 일이다.

협의 이혼을 위해 재산을 나열하며 적어본 종이조차 그는 휴지통에서 꺼내 사진 찍은 후 ‘이 여자가 이렇게 돈 욕심이 많습니다’라며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그렇게 적어가며 협의를 요청한 데 대해서는 간단히 ‘돈 때문에 못 하겠다’라고 해놓고. 이렇듯 부부로 같이 사는 동안 있었던 오만가지 일을 모르는 사람에게 낱낱이 까발린다는 점에서 이혼 소송은 자주 사람을 수치스럽게 만든다.


저 위에 신이 있다면 누구든 그가 너무도 간절히 바라는 그 무엇인가는 그렇게 쉽게 주지 않는 법일까? 그래서 그는 절대 원하는 만큼 많은 재산을 가질 수 없고, 나는 어쩌면 아이들을 키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최근 ‘사람은 1000개, 10008개의 방법을 쥐어짜고 만들어서 얻고 싶은 것을 얻고자 하나, 하늘은 그가 그럴 자격을 가졌나 그 하나만 본다.’라는 문구를 우연히 읽었다. 나는 과연 엄마로서 자격이 있을까? 최소한 아이들은 엄마든 아빠든 최소한 한 명을 매일 볼 자격이 있을 것 같은데. 할머니 손에 저렇게 방치돼서는 안 될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가끔은 나도 잘 모르겠다.




전남편이 ‘일주일에 반 이상 대구에 가 있다’란 자신의 말과 달리 일주일에 4일은 직장에 출근하던데요,라고 직접 관찰한 결과를 상담위원에게 말했다. 그녀는 나와 먼저 상담하고 그와는 이어서 그 뒤에 했는데, 두 사람 대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어느새 상담실 밖으로 언성이 높아져 흘렀다. 그의 분노 게이지가 높아졌나 보았다. 어쩜 1년 동안 그는 하나도 바뀐 게 없었다.

상담위원이 뭐라고 말했는지 모르지만, 다시 상담실에 들어갔더니 10월 언젠가부터 그가 대구 시댁에서 회사로 매일 출퇴근을 하겠다고 우겼다. 다음 상담 이전까지 매일 대구로 출퇴근하며 증거를 남겨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세 들어 사는 서울 오피스텔을 완전히 정리하지 않는 이상, 혹은 그의 말대로 정말 서울에 전세를 구해 아이들을 완전히 데려오지 않는 이상, 도대체 그게 무슨 소용이고 의미란 말인가. 나는 “어떻게?”라고 물었으나 그는 “네가 상관할 바 아니다.”라고 했다.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피곤한 다툼의 연속이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더 힘을 낼 밖에는.

글을 쓰면서 한 번 더 다짐해본다.

지금 힘들다고 해서 쉽고 불행한 길을 택하지 않겠노라고.

어렵지만 결국은 행복해질 선택을 하고, 힘들지만 옳은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내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언젠가 그를 용서해주어야겠지만

이익을 위해 선을 버리는 그는

결국 몇 배로 되돌려 받을 수밖에 없을 테고,

난 살아서 그가 받는 벌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겠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법원이 마지막엔 병신 같은 판결을 내리진 않겠지, 그 생각도 함께 기록해둔다.

부디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결과가 있길. 그리고 그 좋은 결과를 위해 지금 나는 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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