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환지통이 뭔지 처음 알았다. 환지통이란 잘린 신체 부위가 아직도 있는 것으로 착각해 느끼는 통증을 말한다. 그 부위는 절단되어 이미 없는데도 거기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책 속 인물인 인선은 공방에서 작업을 하다 손가락 두 마디를 잘리고 만다. 그 잘린 손가락을 다시 붙이기 위해서는 절단된 끝 부위에 피가 굳지 않게 3분마다 다시 그곳을 찔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신경이 죽어버린다고 했다. 간병인이 3분마다 바늘을 소독해 채 피가 굳지 않은 그곳을 재차 찌르는 장면을 읽을 때는 나도 뾰족한 아찔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너무 힘든 나머지 병문안을 온 친구에게 치료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비쳤다.
“의료진은 내가 당연히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특히 오른쪽 집게손가락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니까.”
공방을 하기 전 카메라를 들었던 그녀이므로 오른쪽 집게손가락은 무엇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내게 이런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사람들은 내가 당연히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특히 아이들은 엄마에게 중요하니까.”
이제와 인선이 포기한다 해도, 없어진 손가락의 통증을 평생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사는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손가락을 포기할 경우 통증은 평생 계속된다고. 그래서 결국 그녀가 환지통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손가락 두 마디를 정상적으로 붙이기 위해서는 앞으로 3주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3분마다 침을 맞으며 견뎌야만 한다.
안정이 오래되면 외려 변화를 찾게 되고, 아무리 불안정한 상황일지라도 안정은 순간순간 나비처럼 찾아든다. 아이들이 없는 내 생활은 불안정하다. 하지만 때로 그 안에서 어느 에피쿠로스 학파의 한 학자라면 인정할 만한 ‘적당한 만족’을 느낄 때도 있다. 사람들과의 수다, 몸을 움직여 땀을 내는 걷기, 맛있는 음식과 와인과 같은 데서.
이번 주 학교에서는 확진자가 나온 아동센터에 반 학생 하나가 다니고 있던 터라 심리적으로 무척 예민했다. 수업이 가장 긴 목요일에 원래 운동장에 나가는 시간인데, 이번 에는 혹시 몰라 모두가 하루 종일 자기 자리에 붙어있어야 했다. 다행히 별일 없이 한 주가 지나고 집에서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나오니 분명 있어야 할 두 아이가 없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안하다.
나는 당연히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겠지만, 3분마다 계속 피가 흐르도록 나를 찌르겠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한 번 떨어진 손가락이 끝내 안 붙으란 법이 없지 않냐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게 떨어진 두 아이와 내가 붙지 않으면, 의사가 인선에게 한 말처럼 평생 그 아픔을 느끼며 살아가려나? 하지만 내가 두 아이를 키웠을 때 올 수 있는 어떤 희미한 불행이 아예 오지 못하게 하는 그런 액땜 같은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
때로 안정을 느끼면서도, 이 거대한 불안정 속에 계속해서 이어질 그 고통이 이제 와서야 걱정된다. 3분마다 잘린 손끝을 찌르는 일과 같이 고통스러운 이혼 소송은 언젠가 끝이 날 것이다. 부디 인선의 떨어진 두 마디가 꼭 다시 붙었으면. 그리고 내게는 어여쁜 아이들이 어서 돌아왔으면 좋겠다.
직장을 마치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더니 알 수 없는 외로움에 힘이 빠진다는 미혼 독신녀의 토로를 한 온라인 카페에서 읽었다. 그녀의 글을 보며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지옥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각자의 영역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삶과 가지지 못한 그 무엇으로 우리 스스로를 괴롭히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