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이 있을 때 가끔 메이크업샵에 간다. 화장을 예쁘게 받고 나면 그제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그럭저럭 괜찮아 보인다. 그래도 본래 생김새는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공들여 화장한 후 사진을 찍는다 해도 건질만한 건 몇 장 안된다. 괜히 '호박에 줄 긋기'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푸석해지는 피부를 참다 참다 며칠 전에는 결국 새로운 리프팅 시술을 받고 왔다.
내 자아상은 이렇듯 엉망이다. 학교 다닐 때는 점수로 내 가치가 매겨졌는데, 이제는 아무래도 외모로 한 사람의 가치가 매겨지는 것 같다. 화장을 지운 내 맨 얼굴은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쉽게 짐작해버린다. 단지 화장뿐만이 아니다.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는 쉽사리 서운한 말 한마디 건네기가 겁난다. 거기에 잇따를 갈등이 너무 무섭기 때문이다. 나는 잘 싸우는 법을 모른다. 내가 어느 날 화를 낸다면 그건 그간 있었던 서운함의 응축이고, 이제 더 그 사람을 보지 않게 될지라도 도저히 더 참지 못할 절벽의 한 끗 전 포효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접근금지 처분이 나자마자 남편이 넌더리가 날 정도로 지긋지긋했던 나는 그에게 아이들을 맡긴 채 연락을 뚝 끊어버렸다. 원래는 별거를 하고 나간 후에도 퇴근 후 평소처럼 아이들을 돌봤었다. 그런데도 남편은 나 없는 육아가 힘들었는지 툭하면
"네가 엄마냐?"
라며 온갖 심한 말로 사람을 괴롭혔다. 덕분에 그와 잠시라도 아무 연락도 주고받지 않고 떨어져 지내는 게 소원이었다.
그가 육아휴직을 앞두고 있어서 마음을 놓았다곤 하지만 사실 그것조차 내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남편의 비난을 견디면서도 엄마의 도리를 다했던 육아의 고단함도, 몇 년 간 나아지지 않던 그의 폭력에 더 손쓸 수 없어 무기력하고 우울했던 점도 있었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그보다 '이 사랑은 이제 끝났다'는 절망감이 마음속 깊이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 별거해 나가기까지 남편은 세 번의 내 생일을 모두 챙기지 않았다. 그의 마음에서 확실히 사랑이 끝났음이 분명했다.
어제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오은영 박사님의 '화해'라는 책을 빌려보았다. 그리고 지금 이 모든 과정을 견디고 있는 내 안에, 미처 충분히 안아주지 못한 ‘어린 나’를 다시 마주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의 나는 오로지 성적으로 평가를 받았다. 아이답게 실수하고 어리광 부렸을 때 돌아오는 말은
"넌 왜 그러니?"
혹은
"그것밖에 안되니?"
였다.
그 "그것밖에 안되니?"를 깨기 위해 나 스스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깡그리 잊은 채 공부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부모님의 요구는 한계가 없었다. 죽을 고생을 하고 전교 1등을 하고 나서야 부모님의 요구에는 끝이 없음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친구 하나 없이, 좋아하는 그 무엇 하나 소리 내 말하지 못하고 지내온 시간이 너무나 허무했다. 나는 그렇게 내가 아닌 빈 껍데기로 공부만 하다 어른이 되고 말았다.
어려서 꼭 필요했던 '조건 없는 사랑'의 부재는 삶의 모든 것이 다 내가 해내야 할 책임으로 다가오게 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때로 끝없는 고통 속을 살아가는 것처럼 느낀다.
어쩌면 나는 이제껏 성인 대 성인의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내 어린 시절 결핍된 '무조건적인 사랑'을 상대에게 요구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불쌍한 나를 상대가 동정하는 순간, 그 관계는 진정한 사랑에서 멀어졌으리라. 그렇게 스스로 약자의 위치를 자처하며, 내 부모조차 해주지 못했던 불가능한 사랑을 상대에게 요구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이 관계는 쉬이 균형을 잃고, 이렇게 폭력으로까지 치달은 건지도 모르겠다.
다 큰 내 몸속 한 구석에 들어앉아 아직도 계속 눈물 흘리고 있는 그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누구든 나를 동정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내가 보기에 아직도 내가 불쌍해 죽겠다. 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의 동정을 받지 않으려면, 스스로 괜찮아지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매일, 하루를 살아내느라 고생했다고 말해줄까. 이 모든 무거운 짐을 등에 메고도 매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식사를 하고, 다소 어렵지만 동료 선생님들과 잘 지내려고 조심조심하며 보내는 일상적인 하루가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할까. 그때 내가 아이답게 크지 못한 게 내 잘못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이제 어른이 된 나는 거기서 한 벌 떨어져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또 나아질 수 있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다짐해야 할까.
지금부터는 친절과 사랑을 구분할 줄도, 내가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지도 구분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바뀌는 건 한 순간이고 내가 어찌할 수 없지만, 내 마음만은 최소한 내가 알아차리고 노력이라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라도 이런 나를 똑바로 쳐다보게 되어 지금 무척 떨리고 기쁘다. 앞으로 살면서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나는 이전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될 거란 걸 의심하지 않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