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와 노부부가 있는 풍경

by 이주희

11월 말이다. 준비가 빠른 집은 벌써 크리스마스트리를 집으로 시키나 보았다. 엘리베이터 안에 한 가족의 대화를 우연히 훔쳐 들었다.

"집에 뭐 왔다는데?

"트리일 거야. 내가 시켰어."

아내 분이 쇼핑몰 아이디를 남편 것으로 쓰는 모양이었다.

"벌써?"

남편 분은 진심으로 놀란 눈치다.

"원래 지금쯤부터 하는 거야."

여섯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는 세 가족.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있다는 건 완전히 잊은 듯이 아빠되는 분이 소리쳤다.

"벌써 왔네!"

가족의 뒷모습을 반사적으로 바라보며 집에 들어가 오손도손 트리를 함께 꾸밀 그 따뜻한 풍경이 눈에 그려졌다.

나는 가질 수 없는 그 그림이.

노부부가 앉았던 그 자리. 여기에도 트리가 있어요!

일요일 아침 독서모임이 있어 약속한 카페로 부랴부랴 나갔다. 지난번에도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곳이다. 그때도 트리 장식이 되어있었는데, 생경했던 그 트리가 이제는 '때가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침 캐럴까지 나오고 있었다.

아침을 못 먹었던 터라 빵과 커피를 주문하고 1층에서 잠깐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무심코 창밖을 보니 큼직한 통유리창으로 바깥 풍경이 여과 없이 눈에 들어왔다. 반쯤 헐벗은 단풍나무들이 이제 가을이 가고 있음을 몸소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쓸쓸한 배경 앞에 다정히 커피잔을 마주하고 앉은 노부부가 보였다.

두 분 다 머리숱이 수북한 백발이셨다. 쨍한 코발트색 울코트를 걸친 할머니, 허리는 약간 구부정하지만 걸을 땐 꼿꼿한 할아버지에게서 도시 부부의 멋스러움이 풍겼다. 아침 일찍 커피 한 잔을 놓고 앉아 낙엽을 배경으로 함께 앉아계시던 그 장면의 프레임이란!

... 그것 또한 내가 가지지 못할 그림일 것이다. 내 것일 수 없기에 더 애절한 느낌을 여러분도 아실까?




남편과 필리핀 보홀 섬으로 여행 간 적이 있다. 그때 옆자리 선생님의 소개로 이제 막 거의 다 지은 리조트를 적당한 가격에 묵었었다. 사람이 아무도 없던 풀에 들어가 놀며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인생을 그냥 재미없게 살 줄 알았어."

당연했다. 그는 그냥 나를 따라다니기만 하면 됐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내 덕에 삶이 조금 더 즐거웠다는 뜻이었을 거다.


집 근처 쇼핑몰에는 올해 레고로 된 큰 트리를 갖다 놓았다.

한창 아기 키울 때 잠시 짬을 내서 함께 그 쇼핑몰 지하 대형마트를 들른 적이 있다. 그때도 나름 크고 예쁜 트리가 있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가서 서 보라던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때 내가 그의 요청에 응했던가, 거부했던가?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단 한 번도 마음속에서 그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렇게 폭력적인 사람이 남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사람과 같이 살려면 나도 비슷한 인간으로 강등되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실제 그와 살며 점점 그와 다를 바 없어져가는 스스로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서,

이혼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쩌다 보니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몇몇 사람에게 이혼 중이라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저도 잘못이 있겠지요."

라는 시인을 처음으로 했다.

한 번 이렇게 말하고 나니 두 번째는 더 말하기가 수월했다.

그래, 어디 한쪽의 잘못이겠나.


너무 사랑하진 않았나 봅니다. 그의 흠결도 안고 갈 정도로.
비겁하게 혼자 도망쳤어요. 그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나와 상관없는 일로 만들고 싶었어요. 저도 겁이 났거든요.
따지고 보면 늘 전부를 걸진 않는 사랑이었습니다. 늘 현재를 생각했어요.
100% 사랑하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스스로가 소중한 저는
어쩌면 모든 걸 다 주는 그런 사랑은 앞으로도 영영 어려운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질 수 없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깨달으며. 영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장면, 트리가 있는 풍경에는 앞으로도 내가 설 자리가 없을 것 같아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마음이 더욱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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