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후안무치한 사람을 대하는 방법

by 이주희

부끄러움을 모르던 한 늙은이가 죽었다.

뉴스는 난리였다. 얼마 전 돌아가신 다른 전 대통령도 아직까지 묘역이 결정되지 못하고 있지만, 그때보다 대중의 반응은 더 냉랭하다.


그의 죽음만큼 중요했는지

남자 친구의 스토킹을 수차례 신고하고도 결국 그의 손에 죽게 된 가련한 여자의 사연이 방송에서 이어 나왔다.

'부부간 폭력 사건도 본 체 만 체인데, 사귀는 사이면 더했겠지.'

내가 신고하고도 '같이 살자'는 생각에 합의한 많은 사건이 눈앞에 지나가는 듯했다. 임시조치 신청에 경찰과 바로 연결되는 스마트워치까지 가져갈 정도면 불안감이 엄청났을 텐데. 정신적으로 오래 무척 힘들었을 그녀가 안타깝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뒤이어 한 가지가 더 떠올랐다. 내가 합의해줬으니 전과 기록도 없고, 오히려 자신은 '억울하다'라고 말하는 전 남편의 검은 눈동자가.




돌아가신 그 전 대통령은 죽기 전까지 법원을 들락거렸다.

모두가 아는 뻔한 사실을 가지고 몇십 년간 소송을 하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깊은 상처로 문드러져 있을까.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잘못을

딱 한 명,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만 인정하지 않았다. 죽는 날까지.


책 ‘하루 쓰기 공부’ 중에서


'오징어 게임'에 이어 '지옥'이 넷플릭스를 휩쓸고 있다.

연상호 감독의 창작물을 좋아하는 터라 며칠 전 몰아보았다.

신은 잘못한 인간을 벌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일개 인간으로서 신의 뜻이 정말 그러한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신이든 뭐든 간에

다른 생명의 목숨을 앗아갈 권리는 없다는 거다.


계속되는 우연을 거듭하며 길흉화복을 겪는 인간으로서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를 위로해줄 수 있다.

함께 어깨를 맞대고

슬픈 일에 함께 울어줄 수 있다.

잘못된 일에 함께 분노할 수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세상을 마감한 이때

그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은 분에게

'이제 노여움을 푸시라'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날 그곳에서 수많은 목숨이 피어나 보지도 못하고 처참히 스러져갈 때
아무런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사과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그의 잘못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혹시 한평생 당겨와 옆자리에 오래 앉혀놓으셨을지 모를 ‘적의’를
가게 놓아주십시오.
잊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앞으로 언제든 이런 비극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지켜봐 주십시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의 삶을 살아내십시오.


내 소송은 언제쯤 끝날까?

세상에는 돌아가신 그분처럼 죽을 때까지 후안무치한 이도 있는가 본데...

그가 한 때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었던 게 지금 너무 부끄러운 것처럼

남편이 한 때 내가 아꼈던 가족이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꼭꼭 숨기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저도, 저의 적의를
깜빡 잊을라치면 옆에 와 길게 누워있는 그 감정을
보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거기에 매달려 평생 제 삶을 살지 못하게 될까 봐서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니 한 번 후안무치는 평생 후안무치인가 본데요?
어줍잖은 사과를 기대할 필요조차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포기하고, 나름의 잊는 방법을 찾아야 할지도...

결국 그 후안무치 밑에 같이 있는 아이들이 제일 불쌍한데, 저만 그런 거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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