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by 이주희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창문가에 기대 기타를 치며 부르던 노래가 있다. 바로 'Moon River'다. 꿈꾸는 듯한 가사와 잔잔한 그 선율을 너무 좋아했던 나머지 나는 결혼식 때 신부 입장곡으로 이 노래를 선택했다.


여느 때처럼 올림픽 공원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 늘 틀어져있는 클래식 FM에서 프랭크 시나트라 공연 실황이 흘러나왔다. 낙엽이 가로수길마다 가득 쌓여 노오란 카펫이 된 늦가을 한밤, 차가운 도로 위 스산한 가로등 불빛과 그의 굵직한 목소리가 제법 잘 어울렸다. 'New York, New York'을 들으면서는 그 공연이 뉴욕에서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Fly me to the Moon'을 거쳐 'My way'에 와서는 공연 분위기가 절정에 다다랐다. 사람들의 박수 갈채 소리가 점점 커졌다. 엑셀을 밟는 내 오른발에도 음악 소리를 따라 리듬이 실렸다. 조금만 더 기분이 좋았으면 정말 오랜만에 콧노래를 흥얼거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즈음 다음 곡 'Moon River'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날 Moon River에 맞춰 입었던 웨딩드레스는 가장 비싼 최고급은 아니어도 중상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작by이명순이라는 브랜드던가. 반드르르한 윤이 나는 공단 소재에 머메이드라인으로 몸의 볼륨감을 최대한 살린 드레스였다. 가슴께엔 자잘한 망사로 노출은 줄이면서 비즈로 반짝임을 더했다. 길쭉한 드레스에 맞춰 준비한 카라 부케 중 한 송이가 목이 꺾여 너덜너덜했던 것 말고는 거의 완벽한 신부 입장이었다.




'남편과 이대로는 같이 못 살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는 도저히 이 노래와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날의 근거 없는 '잘 살리라'는 예감이,

"너무 웃지 마라."

라고 신부 입장 전 내 손을 잡고 당부하던 아버지의 말씀이 노래 제목만 들어도 너무 생생히 떠올라서였다.


그렇게 갑자기 라디오에서 Moon River가 흘러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남자 가수가 그 노래를 부를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제 소송을 시작한 지 어언 1년이 넘어서 그런지 이전보다는 듣기가 한결 듣기가 덜 힘들었다. 나는 애써 라디오를 끄지 않고 처음으로 남자 가수가 부르는 Moon River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어느 조각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연히 맞닥드리는 건 참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난 이렇게 글을 쓰는 걸까? 다 써서 밖으로 내보내고, 나로부터는 모조리 털어내기 위해서.


지나간 과거를 이번처럼 갑자기 마주하게 되더라도

가슴이 내려앉거나, 눈물이 나거나

나를 탓하거나

그러지 않기 위해서

일종의 연습을 거듭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수월할까.

예고 없는 아픈 과거와의 대면은 늘 심장을 떨리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그래도 결국 괜찮아지기 위한 연습이라고 여기다 보면

언젠가는 다 괜찮아지지 않을까. 정말 언젠가는.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할 때는 그렇지가 못하다.

나와 떨어져 있음을 때때로 확인할 때마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이건 앞으로도 영원히 적응하지 못하고

그때마다 수도꼭지 튼 것처럼 눈물이 자동으로 나올 것 같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Moon River, 들어보실래요?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물건에 서린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