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에 쓴 글을 옮김
이제 이틀 뒤면 남편의 생일이다. 어떤 선물을 하면 기억에 남을까 생각해보다가 현동판 용비어천가를 써보기로 했다. 자신을 찬양하는 글을 읽고 기분이 좋지 않을 사람은 없을테고, 흔하게 "사랑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등의 말들은 사실 생일 축하 카드 표지에 곰돌이 혹은 토끼가 들고 있는 Happy Birthday 문구 같은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는데, 나는 한번도 무언가를 찬양하는 글을 써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열렬히 찬양 받고 있는 것을 반박하는 글쓰기에는 무척 익숙하지만, 그 반대의 방법은 한번도 익혀 본 적이 없었다. 찬양이라는 감정, 그 행위가 얼마나 내게 비일상적인 것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아, 고양이나 자연과 같은 존재에 대한 건 예외) 그럼 찬양을 사랑으로 치환하면 조금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했고, 결론적으로 내가 왜 남편을 사랑하는 지에 대한 이유를 나열해보도록 하겠다. 이 글은 그의 생일을 기념하는 러브레터이자 2021년 7월, 내가 이현동을 사랑하는 이유를 기억하기 위한 기록이기도 하다.
첫째, 남편은 본인의 의식적인 노력없이도 진심으로 존중하고 존경하게 되는 사람이다.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나는 안타깝게도 무언가를 찬양하고, 존경하고 경외하는 종류의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모든 사람은 각자 삶의 모습에 이유가 있기 마련이고, 실제로 그 상황에서 경험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어떠한 표면만으로 존경하거나 멸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이렇게 정리된 언어로 표현하는 데 까지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어렴풋하게 그런 생각을 어릴 적 부터 항상 품고 있었다.
남편과 만난 후로 내 관점에 변화 생긴 건 아니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를 존경한다. 아마도 내가 존경하는 세상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그 존경의 근원은 남편의 내적 에너지에 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심적으로 지치는 일이나 사람에 치이는 일이 정말 많을텐데,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사랑,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마음이 별로 없는 나와 비교하면 신기한 일이다. 본인 스스로는, '나는 호불호가 별로 없어서 다 괜찮아' 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건 내적인 에너지가 엄청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포용력이다. 이런 성향으로, 많은 상황에서 쉽게 감동 받고 경외심을 갖고 행복해하는 그를 보면 정말이지 사랑스럽다. 심지어 이런 성향이 후천적인 상황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원래 그렇게 타고난 사람, 부모님의 큰 사랑으로 자연스레 그렇게 자라난 사람이라는 점도 내가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둘째, 남편은 나를 가장 나답게 살고, 사랑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나는 남편에 비하면 까칠한 타입이다. 좋아하는 것이 많은 반면에 싫어하는 것은 더 많고,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나만의 의견이 정리되어 있는, 한 마디로 좀 피곤한 유형이다. '으레 그러합니다' 식의 사회적인 합의나 규범에 항상 의문이 있는 편이고, 의문을 갖는 내 자신을 좋아하기까지 하는 구제불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내가 불행하게도 인간으로 태어나(고양이로 태어났으면 딱이다), 사회적 구조에 속해 살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페르소나를 써야했고 그러다보니 일정 부분 둥글게 변한 구석도 많지만, 어딘가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친구를 사귀거나, 연애를 하거나, 누군가의 후배 혹은 선배가 되거나, 하물며 딸이 되는 그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다. 많은 부분에서 입을 떼지 않아야 평화가 유지 되었고, 때때로 나도 만족하기도 했다.
남편을 만나고 내 자아는 사실상 해방을 맞이했다. 이는 남편에게는 정말이지 'toxic masculinity' 를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에 기인하는데, 이건 그 개념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귀하고 멋진 것인지 알 것이다. 자신이 생각해본 적 없는 의견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자신이 틀렸을 지도 모른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훌륭한 메타인지, 똑똑한 의견 개진과 적절한 호응, 함께 탐구하고자 하는 동료의식. 이 모든 것이 남편의 사고방식과 소통 방법 중의 일부인데, 이것들이 의식적으로 '지식인 태도' 를 견지하며 행하는 모습들이 아니라, 숨쉬고 걷는 것처럼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솔직히 말해서 난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남편의 유연함 덕분에 나는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하며 의견을 교환하고, 더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남편도 마찬가지다. 내 뾰족함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사람, 그리고 나에게 또 다른 것을 제안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은 그 무엇보다도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셋째, 남편은 튼튼하다.
앞에 두 가지 이유에 비하면 굉장히 단순해보이지만, 어찌보면 세번째 이유가 없다면 앞에 두 가지 이유는 아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남편은 어릴 적부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프로를 꿈꾸며 운동선수를 했던 꿈나무였다. 그것이 원인인지 뼈가 굵고 몸이 전체적으로 단단한 체형인데, 그런 몸 때문일까? 체력이 정말 좋다. 여기서 말하는 체력이라는 건 지체하지 않는 행동력과 연관이 깊다. 남편은 휴일이 되서 조금 늦잠을 자더라도 기상하고 나서는 바로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싱크대를 치우고, 방을 정리하고, 평일에 봐두었던 수리할 수 있는 부분들을 살핀다. 나도 부지런하고 일을 미루지 않는 편이지만 손재주가 없어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어 있는데, 튼튼한 그가 뚝딱뚝딱 물건들을 만지고 나르며 완성해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반하게 된다. 친절함은 체력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앞에서 언급 했던 남편의 유연함과 사랑은 어쩌면 이런 강건한 체력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댈 때 편한 넒은 어깨, 나도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매력은 부수적인 (과연?) 일 뿐이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남편은 정말 드물게 좋은 사람이고, 단순히 '좋은 사람' 이라는 말로 퉁치기에는 그만이 가진 고유의 특징을 가리울 정도로 독특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그를 알아보고 사랑하여 결혼까지 한 나 스스로를 칭찬하고, 날 선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둥기둥기 사랑해주는 남편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우린 그렇게 길지 않은 연애를 하고 결혼했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발견할 수 있는 면모가 많이 남았다는 의미기도 할 것이다. 내년 남편의 생일에는 또 다른 이유를 들어, 현동판 용비어천가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