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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 그리고

악(惡)

by 안전모드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나보다 두 살 많은 형이었다.

집의 화재로 인해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해 몸에 화상 자국이 남았지만, 항상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면이야 내가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나와 함께할 때는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초등 시절의 나는 개구쟁이여서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갔고,

처음에는 나를 부담스러워하던 사람들도 결국은 나를 받아주었다.

형, 동생, 친구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았고,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인이 되고 나서 그 형을 뉴스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살인, 사형선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고등학생 때, 토론 수업에서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다.

나는 내가 경험하고 배운 짧은 지식으로 성선설을 주장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은 본래 착할까? 아니면 악할까?


그 질문은 내 삶이 굴곡을 겪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면서도 계속해서 변해갔다.

하지만 여전히 명확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고 한다.

그 변화를 일으키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

사는 곳을 바꾸는 것.

만나는 사람을 바꾸는 것.

시간을 쓰는 방식(습관)을 바꾸는 것.


변화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위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먼저 바꿔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하면 남은 인생이 지금과는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이 제법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나부터도 어디서부터 바꿔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으며 인간의 본성과 나쁜 습관들을 바꾸려 노력한다.

지금 하는 일에 새로운 부업이나 도전을 계속 추가하면서, 그 경험을 통해 조금씩 나아가고자 한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끝을 생각해야 한다.

그 끝이란, 곧 죽음이다.

죽음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음을 인식하며, 내가 본성으로 회귀하지 않도록

시각, 청각, 촉각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가까이 두려고 한다.

그리고 항상 나를 의심하며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본성과 맞서 싸우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이 결국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우리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하며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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