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우리

서로가 전부였던 그 시절, 서로만 빠진 먼 훗날

by 글쓰는 한큐

창문에 성에가 끼고 연말이 가까워질 즈음이면 꼭 꺼내보는 영화가 있다.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나는, 여전히 성장통이 아프다. 그래서였을까. 영화 속 두 사람에게 유독 마음이 쓰였다.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모른 채, 휴지뭉텅이로 눈가를 문지르며 엔딩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화면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나를 여러 번 발견했다.


잃어버린 사람도 없는데, 나는 대체 누굴 그리워하고 있었을까.



"그곳에서 5년을 버티면, 그곳 사람이 된대."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온 두 주인공은 각자의 방식으로 꿈을 좇는다. 빛조차 들지 않는 단칸방, 좀처럼 낮아지지 않는 취업의 문턱. 영화 속 세상은 그들에게 결코 너그럽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버틴다. 서로가 있었기에, 힘든 시간을 때로는 웃으며 견뎌낼 수 있었다.


치열하게 경쟁하며 대학에 들어왔지만, 숨 돌릴 틈도 없이 취업이라는 과제가 주어진다. 그 문턱을 넘으면 끝일까. 아니다. 자산을 불리고, 집을 마련하고,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또 다른 기준들이 줄지어 기다린다.

도시의 삶에 적응하고 세상이 요구하는 기대를 충족하면 과연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아직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이 손때 묻지 않은 나의 의지라 말하기엔, 삶은 때로 너무 정해진 궤도를 달리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늘 해야 하는 일을 해내느라 뒷전으로 밀려났던 ‘하고 싶은 마음’을 돌아보기로 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아이였는지 떠올리다 보니, 그동안 나 자신에게 꽤 무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적어도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외면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혹시 세상이 내게 유독 모질었던 이유는, 내가 나 자신에게 가장 냉정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비참한 사람 둘이 있으면 행복해지지."


외로운 두 사람이 만나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줄 알았다. 외롭지 않은 척하는 법은 알았지만, 정작 외롭지 않게 사는 법은 몰랐던 그들은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어머니를 여의고 홀로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젠칭에게 게임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반면, 너무 일찍 홀로 서는 법을 배운 샤오샤오는 늘 사랑에 굶주려 있었다. 안정적인 가정과 온기를 찾아 헤매던 그녀는 작은 친절에도 쉽게 흔들렸고, 그럴수록 더 깊은 외로움 속으로 들어갔다.


우습게도 사람은 어떤 불행이든 익숙해진다. 그러나 익숙해진다는 것이 괜찮아진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비참함을 품고 살아갈 뿐이다. 나는 그들의 사랑이 애처로웠다. 닳아빠진 마음을 어떻게든 기워 가장 예쁜 모양으로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 모습에 웃음이 나다가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서로에게 구원이 되고 싶었지만 끝내 서로를 놓아야 했던 그들을 보며, 나를 스쳐간 관계들이 떠올랐다. 잘해보고 싶었지만 잘하려 할수록 더 엉망이 되었던 시간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고, 그 시절의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언이 캘리를 끝내 못 찾으면?"

"세상이 온통 무채색이 되지."


떠나는 샤오샤오를 붙잡을 용기조차 없었던 젠칭은, 그녀를 잃고서야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함께한 추억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게임으로 성공하지만, 게임 속 이언이 끝내 켈리를 찾지 못하듯 그의 세상은 여전히 회색빛이다. 부유한 삶을 손에 쥐었지만, 정작 그녀는 곁에 없다.


폭설로 비행기가 결항되어 호텔에서 밤을 보내게 된 두 사람은 긴 대화를 나눈다.


“네 바람대로 다 됐다면?”

“결국 다 가졌겠지.”

“서로만 빼고.”


결국 그는 다 가졌다. 그녀만 빼고.

그 담담한 대화가 너무도 현실적이라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들에게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은 너무 어려운 문장이었다. 각자의 삶은 안정되었지만, 함께하는 미래는 없었다.


I miss you.

내가 널 놓쳤어.


영화는 게임 속 이언과 켈리가 만나며, 두 사람의 회색빛 세상에 다시 색이 돌아오는 장면으로 끝난다. 서로의 손을 놓친 후에도 삶은 계속되었고, 그들은 각자의 시간을 살아냈다. 다시 만난 그날,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말들을 꺼내며 상처를 마주한다. 함께였던 시간과 이별의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들이 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만남과 이별은 언제나 서툴고 아프다. 때로는 상대를 미워하고, 때로는 나를 책망한다. 그 모든 시간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된다.

나는 나의 성장통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