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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금 Oct 14. 2023

일본 도쿄대 학생들 그리고 첫 외국인 친구, 유키

프랑스 VICHY에서 만난 사람들 1편


프랑스에서 프랑스인을 만날 거란 착각은 와장창




  떠나기 전, 프랑스에 살면 프랑스인들을 많이 만날 줄 알았다. 오히려 프랑스 이외 나라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제야 현지인을 만날 수 있는 건 여행이고, 온 나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어학연수라는 걸 깨달았다. 어학원에서 언어를 배우는 처지란, 그 언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이라는 뜻이니까 말이다.






  한국에는 ‘서울대’가 있다면 일본에는 ‘도쿄대’가 있다. 도쿄대학교는 자타공인 일본 내 최고 대학이자 가장 오래된 일본 국립대학이다. 살면서 도쿄대 학생들을 만나볼 일이 있을 거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어라, VICHY에서 떼거지로 만났다.


  그들은 졸업반 학생들로 프랑스 파리 대학원과 연계된 석사과정을 밟기 전, 프랑스 VICHY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었다. 아직도 얼굴이 기억나는 그 발랄한 20대 초반의 학생들은 도쿄대 학생답게 학구열도 뛰어나고 명석했으며 노는 것도 정말 잘했다. 같은 시기에 온 한국인 학생들보다 빠르게 어학 레벨을 올려서 한국인들의 질투와 부러움을 동시에 샀다.


일본의 도쿄대학교 @위키백과


  일본인 친구들과 같이 수업을 받으며 충격받았던 일화가 있다. 자유로운 오후 아뜰리에 수업이 끝나갈 무렵,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이 있나요?”하고 물었다. 한국인 학생들은 단 한 명도 손을 들지 않았다. EBS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질문이 없는 한국교실을 프랑스에서 맞닥트렸다.


  그러나 일본인 학생들은 일제히 손을 들고 집요하게 질문해 댔다. ‘와, 저런 것까지 질문한다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기초적인 것도 자신이 모른다고 생각하면 질문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한국인 학생들은 창피당할까 질문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때 일본인 학생들을 보고 정말 많이 배웠다.






  나는 도쿄대 학생들 중에서 유일하게 여성이었던 유키와 친해졌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전형적인 일본인(키가 작고 내향적이라고 생각되는)과는 전혀 달랐다. 유키는 165cm 이상으로 키가 크고 외향적이며 진취적인 성격에 웨지굽 샌들을 즐겨 신었다. 그리고 히피 스타일 롱 드레스를 자주 입었고 여행을 정말 좋아해 주말이면 근교 도시로 떠나곤 했다. 오후 수업이 끝나면 놀러 나가고, 주말이 되면 무조건 여행을 떠나는 유키가 어떻게 그렇게 프랑스어 실력을 늘렸는지 난 아직도 모르겠다.


바글바글 박작박작 어학원 수업 /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유키와 회색 티셔츠를 입은 나


  처음 어학원에 들어갔을 때 유키와 같은 오전반에 들어가며 인연이 시작되었고, 유난히 내성적인 내게 유키가 말을 걸며 친구가 되었다. 마당발인 유키 덕에 도쿄대 남학생들과도 두루 알게 되어 덜 고독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서로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키가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 나는 항상 생글생글 웃는 유키에게 호감이 있던 터라 선뜻 그러겠다고 했다. 우리는 거진 2시간이나 되는 점심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어학원 근처 피자전문점에 갔다. 사진 하나 없는 피자집 메뉴판을 쳐다보다 고민 끝에 anchois가 들어간 피자를 시켰다. 솔직히 그게 뭔지 잘 몰랐다.


충격의 멸치 피자


  얼마 후 나온 피자를 보고 속으로 경악했다. 멸치 피자라니… 그리고 지금 내가 그걸 먹어야 한다니! 와- 정말이지 짠 피자였다. 치킨보다 피자를 좋아하는 내가 두 조각도 억지로 먹고 내려놓았다.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다가 이 멸치 피자가 너무 짜고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을 인정하고 식사를 그만두었다. 그러고서는 안 되는 프랑스어를 사용해 최대한 수다를 떨려고 노력하며 시간을 보냈다. 멸치 피자, 일본인 친구 그리고 프랑스에서의 첫 외식. 이 세 가지의 새로운 체험 때문이련지 멸치피자 데이트는 여전히 생생하다.


  그렇게   유키와는 1살 차이 또래 친구로 연애 이야기, 미래 이야기 등 그 나이 때의 관심사로 많은 얘기를 했다. 거진 3개월 동안  봤던  유키가 파리로 떠날 때는 정말이지 아쉬웠다. 나는 작별선물로 직접 만든 엽서에 프랑스어로 편지를 써주었고, 유키도 내게   작별선물로 직접 만든 종이학 귀걸이를 주었다.






  몇 주전, 열심히 VICHY 에세이 원고를 쓰고 있을 무렵, 당시의 정보를 찾기 위해 잘 들어가지 않는 페이스북에 로그인했다. 그런데 웬걸? 유키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얼마 뒤에 한국여행을 갈 건데 맛집이나 괜찮은 카페를 알려줄 수 있냐는 메시지였다. 너무 반가워 잘 기억나지 않는 프랑스어를 떠올려가며 답장을 했다.


  유키는 4년 동안의 프랑스 유학과 인턴연수를 마치고 도쿄대에서 석사학위를 땄고, 지금은 도쿄에서 일하며 VICHY에서 만난 아르헨티나인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각자 그 당시에 연애를 막 시작한 참이라 할 얘기가 많았었다. 유키는 아르헨티나인이랑 첫 데이트를 시작하고, 나도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면서 연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4년 전의 일이라고, 이미 끝난 과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여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세상에, 그 아르헨티나인 남자친구랑 여전히 사귀고 있다고? 게다가 지금 도쿄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나도 그때 막 연애를 시작했던 남자랑 결혼했어!' 유키도 내게 그때 그 남자랑 결혼했냐면서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고 놀라워했다. 그래, 정말 인생은 예측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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