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VICHY 오페라 하우스와 공연 관람기
난 문화예술을 좋아한다. 전시를 관람하고, 공연을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그냥 그게 좋다.
하지만 공연은 자주 보지 못했는데, 1만원 대면 가능한 전시회나 책 값에 비해 5만원대 이상부터 시작하는 콘서트나 무용 공연 또는 뮤지컬의 가격이 사악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스물넷이 무슨 돈이 있겠나- 한 번에 몇 만원 태울 돈이 없어 공연장에 발을 들이는 건 꿈도 못 꿨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공연이 보고 싶었다. 현대 공연예술 시초는 서양문화권에서 발전된 것이라 그 원조는 어떤지 궁금했다.
7월, 프랑스에 온 지 한 달이 막 지났을 무렵. 어학원에서 휴관 중인 VICHY 오페라 하우스를 관람하는 오후 프로그램이 있었고, 나는 무작정 신청했다. 수업이 끝나고 어학원 앞에 삼삼오오 모였다가 직원의 안내를 따라 줄지어 5분 거리의 오페라 하우스로 향했다.
1900년대 초반 당대 최고 인기였던 아르누보 스타일 건물의 외벽 조각 장식들만 보다가 노란 조명에 황금빛으로 가득한 내부 공간으로 들어섰다. 온 바닥에 깔린 카펫의 푹신함, 화려한 천장 장식이며 섬세한 조각상들까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준공된 지 100년은 넘은 공간이었지만 여전히 장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이들 견학처럼 한 줄로 서서 떼 지어 관람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때 여기서 꼭 공연을 보겠노라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사람들이 바캉스에서 돌아와 활기찬 가을이 된 어느 날. 오페라 하우스 근처에 있는 광고판이 내 눈길을 끌었다. VICHY 오페라 하우스에서 가을/겨울 시즌 공연을 홍보하고 있었다. 우두커니 서서 쭈욱 살펴보다 그나마 내가 알만한 공연을 하나 찾았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비극적 사랑이야기라고 대충 알고 있었다.
공연을 볼 방법을 찾으니 홈페이지로 예매가 가능했다. 바로 VICHY 오페라 하우스 홈페이지로 들어가 가격을 보니 학생은 단돈 26€였다. 가까운 자리에서 4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공연을 볼 수 있다니! 당장 예매하고 공연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10월의 첫 번째 일요일, 오후 3시. 바글거리는 사람들을 따라 오페라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티켓박스에 예매내역을 보여줬다. 직원은 나의 예매내역을 확인하고 노란 티켓을 봉투에 담아 내게 건네주었다. 눈치껏 어딘가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따라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확실한 즐거움이 보장된 웅성거리는 분위기가 더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따르릉 시작벨이 울리고 공연이 시작했다.
90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강렬함, 장렬함, 빛남. 근육을 타고 흐르는 빛. 그 빛이 자아내는 육체의 곡선. 대사 한 마디 없이 그저 몸으로만 표현하는 이야기와 감정들. 현대무용으로 풀어낸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였다.
노래나 대사가 나오는 공연이 익숙했던 내게 동작에 포커스를 맞춘 실험적인 공연은 처음이었다. 외국인으로서 언어의 장벽 없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이었다. 또 관객으로서 새로운 형식의 무용공연을 접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외국의 공연은 한국과는 달리 실험적인 면모가 있었다. 한국 유명 공연장에서는 클래식 공연이나 콘서트가 자주 열리는 편이라 프랑스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오페라 하우스에서 실험적인 공연이 열리는 점이 신기했다.
꼭 문화예술을 좋아하지 않아도 유럽 여행에서 한 번쯤은 현지 공연 관람을 꼭 해보는 것이 좋다. 오래되어 장엄한 공연장도 관람하고, 좋은 공연을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는 점이 메리트인 데다 색다른 경험까지 할 수 있으니 강력 추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