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로그 : 71일차
한여름에서 초겨울이 됐다. 30일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이별로부터 70일이 흘렀고 결과적으로 나는 잘 회복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새 연애라고 부르기 무색할 정도로 우습고 부끄러운 일도 있었고, 그 일로 인한 교훈도 있었고 마음을 쏟을 만한 취미도 생겼다.
17일 이후로 로그가 멈춰버렸음에도 이별하신 분들이 간간이 내 이야기에 공감해주셨다. 보내주신 메일은 정말 큰 힘이 됐다. 해야지, 써야지 하면서 계속 미루고 있어서 부채처럼 느껴졌던 브런치에 다시 접속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별로그가 언제까지 계속될 지 모르겠지만 연애에 관한 글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올리려고 한다. 이제 일상을 꾸려나가는 힘, 자기 회복, 새로 찾아오는 연애들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DOS
1. 운동
운동은 무조건 해야한다. 무조건. 70일동안 나를 가장 회복하게 해주었던 건 사실 운동이었다. 가능하면 즐겁고 힘든 운동이 좋다. 힘든 게 중요하다. 요가나 발레처럼 정적인 운동은 나처럼 집중을 못하는 사람이 하면 끊임없이 딴 생각을 하기 때문에 효과가 약한 듯 하다.
아주 힘든 고강도 운동을 하는 게 좋다. 필라테스, 이왕이면 기구 필라테스, 더 이왕이면 중급 이상의 수업을 들을 것. pt도 좋다. 아래에 다시 얘기 할 거지만 제일 추천하는 건 러닝이다. 러닝은 정말 아주아주 힘들어서 뛰는 동안은 잡담도 할 수 없고, 잡념도 사라진다. 하고 나면 땀도 많이 흘리고 개운하고, 목표했던 거리를 달성하면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몸이 건강해지는 것도 매우 중요한 성취다.
2.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만나기
여기서 사람은 새로운 사람이어도 되고, 알던 사람이어도 된다. 중요한건 '지속성'이다. 일회성 만남보다는 지속적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따라서 원데이 클래스, 파티 등등은 비추천이다.
우선 나는 동창 모임이나 계모임같은 가까운 친구 무리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친구들과 떠들썩한 자리를 갖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고, 남자친구가 사라지니 일상이 너무 고요했다. 늘 나의 내향적인 성격을 탓했는데, 갑자기 내가 자리를 한번 만들어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친구들 여럿을 단톡방에 초대해서 자리를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이 모임은 앞으로도 이어질 예정이다.
그 외 매달 2번씩 만나는 독서모임의 좋은 사람들, 함께 러닝하는 사람들 등등.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고 주변이 북적이게 되니 삶에 즐거운 활력이 생겼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건 늘 건강한 자극인 듯하다.
3. 쓰기
맨 처음 이별로그를 시작한 계기였던 '글쓰기는 이별의 치유에 도움이 될까' 라는 물음에 결론을 내자면, 'YES'다. 매우 커다란 도움이 된다. 어떤 쓰기여도 상관없다. 이별과 향수에 푹 잠긴 도취적인 글쓰기여도 좋고, 지난 사람에게 하고싶은 말도 좋고, 매일매일 감정 일기를 쓰는 것도 좋고. 사고 싶은 것과 그 이유를 쓰거나 배우고 싶은 것 리스트도 좋다. 중요한 건 실제로 쓰는 것이다.
'쓴다'라는 활동 자체에 힘이 있다. 생각을 조직화 할 수 있고, 내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낼 수도 있고 그걸 내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감정이란 게 늘 조금씩 괜찮아지기만 하는 건 아니다. 들쑥날쑥 하고, 좋아지다가도 어떤 날은 언제 괜찮아졌냐는 듯 바닥을 치기도 한다. 그걸 조금씩 기록하면서 내 감정에 대해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내가 얼마나 기쁜지, 얼마나 슬픈지. 뭘 하면 행복하고 뭘 하면 우울해지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언가를 쓰는 것은 정말 내 몸을 열어서 그 안의 것들을 천천히 늘어놓는 작업이다. 가만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업이다. 그것 자체가 회복인 이유다.
4. 러닝
나는 이번 이별을 극복하며 '러닝'이라는 액티비티 정말 큰 도움을 받았는데,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어처구니 없게도 내가 러닝을 지긋지긋하게 싫어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는 지금은 달리기 예찬론자가 되었는데, 싫어하는 것에서 나아가 어쩌면 두려워 하기까지 했던 '달리기'라는 장르를 극복하고자 시작한 챌린지에서 성공한 셈이다.
나는 달리기가 싫었다. 타고난 체력도 별로 좋지 않았고 몸 전체를 움직여야 하는 것도 싫었다. PT 했을 때도 가장 싫었던 게 유산소 타임이었다. 달리기만 하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안 갔다. 하는 동안 너무 지루해서, 트레드밀에 올라가기 전에 도대체 뭘 하면서 30분을 하지? 싶어 막막했다.
그때 달리기가 싫었던 이유는 지금 생각해보면 실내에서, 그것도 같은 자리에서 챗바퀴 구르듯 달리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혼자서. 달리기를 즐겁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1. 실외에서 2. 음악을 틀고 3. 사람들과 함께 하면 된다. 덧붙이자면 장비를 하나씩 갖추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달리기는 의외로 장비병자들의 덕심을 자극하는 장르다.)
요즘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러닝크루들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으니, 인스타그램에서 지역 기반 크루를 찾아보고 함께 하기를 권한다. 나이키 런 어플과 인스타그램 어플을 깔면 달리기가 한층 즐거워진다는 사실은 덤이다. 크루 게스트런을 찾아갈 때는 나만 못해서 낙오될까봐 겁이 났는데, 대형 크루들은 초보자들을 충분히 배려해주니 겁먹지 말고 찾아가보자.
달리기의 매력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매우 정직하고 성실한 스포츠라는 사실이다. 달리기는 요령이 필요 없다. 정직한 자세로 꾸준히 노력하면 아주 천천히 실력이 향상된다. 나도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페이스가 안정적으로 단축되고, 점점 긴 거리의 러닝에 성공하면서 매일매일 퇴근하고 달리기 할 시간이 기다려졌다. 정말 놀라운 변화였다.
달리기에 마음을 쏟게 되며 지난 인연은 점점 추억의 자리로 물러났다. 달리기와 운동은 요즘 나에게 제 1의 관심사다. 나는 요즘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더 신나게 사람들과 달릴 수 있을까. 어떻게 더 운동을 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로 즐겁고 설렌다. 건강+취미+사람이 모두 포함되어있는 러닝의 세계는 정말 너무 매력적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do보다 더 중요한 dont's를.
이별 71일차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