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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금 Aug 29. 2019

글쓰기는 이별의 치유를 도울까

이별로그 : 4일차

 결혼을 바라보던 사람과 두 번째로 헤어졌다. 첫 번째 이별 후 두 달만에 나에게 돌아와 다시 사랑하자 말할 때는 이런 순간이 또 올 줄 꿈에도 몰랐다. 첫 날은 잠을 설쳤고, 둘째 날은 출근할 수가 없어서 방구석에서 울었다. 셋째 날은 한밤중에 깨서 갑자기 화가 나 씩씩거렸고, 오늘은 넷째 날.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가 이 두 번째 이별을 감정적으로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앞으로 쓸 글은 회복의 과정이 궁금해서 시작한 개인 프로젝트, 이별 로그다. 4일차인 오늘부터 30일간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기록하고자 한다.



일요일에 사랑을 시작한 곳, 반포 한강공원에서 이별했다. 두 번째 정식 이별이다. 30대 초반인 그는 이제야 자기 진로를 정했고, 내년 시험에서 떨어지면 이제 갈 곳이 없다고 했다.


 그런 생각을 숨기고 나와의 관계를 이어갔던 마지막 한 달 동안 마음이 점점 좁아졌다고 했다. 지금은 좋아하지만 이대로 가면 널 완전히 사랑하지 않게 될 건 불을 보듯 뻔하다고. 나는 지금 나만 생각하고 싶다고. 


자기가 한 살만 어렸어도 이렇게 놓아버리진 않았을거라는 말이 가슴 아팠다. 그는 요즘 뭘 해도 즐겁지 않고 하루종일 휴대폰을 보고 싶지도 않을 때도 있다고 했다. 너와 있는 이 시간도 마음이 무겁다고.  


바보가 아닌 이상 애인이 멀어지고 있다는 신호는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나도 알았다. 그래서 그가 멀어지는 한 달 동안 매일 불안했다. 그는 내가 다 알면서 모른척, 괜찮은 척 하는게 못내 미안하고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도 아니고, 너한테 이렇게 하는 건 못할 짓인 것 같다는 아주 클래식한 멘트도 했다. 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고 그냥 이 상황때문에 자기 마음이 변한 거라며. 금전적으로 잘해주지 못한게 늘 미안했고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울고불고 매달리기엔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지친 표정을 보고 나는 이별을 납득했다. "우리 역 까지만 같이 갈래?" 하니 그는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따로 떨어져서 걷는 동안 나는 가끔 그의 옆 얼굴을 훔쳐보았다. 아직 사랑하는 게 확실했다. 역 앞에서 안아주고, 꼭 잘 됐으면 좋겠다고 빌어주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날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피로를 느꼈다. 


매번 이별하고나면 그 슬픔을 어찌할 줄 몰라서소개팅 어플을 깔거나, 모임 어플을 뒤지거나 했었는데. 어떻게하면 이 상처를 다른 만남으로 덮을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하고싶지가 않았다. 전남친 애도, 예의,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지쳐 있었다. 마지막 한달동안 그가 멀어지는 걸 지켜봤던 일들. 아닐거라 스스로를 설득시켰던 일들. 의무감에 하는 '사랑해' 한 마디에 온 몸의 긴장을 풀었던 일들. 


누구든 끝났어야 하는 시점을 넘긴 관계를 혼자 붙들고 있었다면 나처럼 지쳤을 것이다.


그 다음날 들었던 감정은 분노나 슬픔, 미움보다는 허무함이다. 1년이라는 시간과 노력과 소중한 순간들이 결말이 아니라 한 챕터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서. 사실 이 사랑이 정말 끝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어 생긴 허무함이었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슬펐지만, 내가 그를 그리워하면 안된다는 사실도 슬펐다. 그래봤자 시간낭비라는 사실이 슬펐다. 첫 번째 이별에도 재회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번 이별은 예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습관적으로 봤던 유튜브 재회 타로도 꼴보기 싫었다. 


4일차, 괜찮다. 잠, 중간에 한번 깼지만 대체로 잘 잤다. 불안하거나 우울하지 않다. 둘째 날 방에 누워있을 때처럼 땅에 꺼지는 듯 무기력하지도 않다. 아직 많이 생각나긴 하고 아침 저녁으로 마음 기복이 심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다. 


전애인의 나쁜 상황이 해결되면 새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아얘 안 드는 건 아니지만, 마지막에 나에게 보여주었던 소홀하고 차가운 모습에서 나는 그의 마음이 다 했다는 걸 안다. 첫 번째 이별처럼 중간에서 뚝 끊긴 게 아니라 다 타버린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귀책' 여부가 이별 후 미련에 정말 중요한 요소같다. 첫 번째 이별과 다르게 이번에 나는 정말 할 만큼 했거든. 내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고, 그저 매 순간 내 사랑과 감정에 충실하고, 또 인내하며 최선을 다했다. 그립고 아프긴 하지만 '내가 그 말/그 잘못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더 잘했다면' 식의 후회는 없다. 그래서, 이 그리움만 털어내면 이 연애의 끝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다. 


이별 4일차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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