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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금 Aug 29. 2019

그깟 사랑해가 뭐라고

이별로그 : 5일차



한 번 재회한 커플의 문제는 여러가지지만, 그 중 하나는 이거다. 다시 헤어졌을 경우 그 이별이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 특히 통보 받은 쪽이라면 더더욱.


처음 이별할 때도 그가 결정했고 이번에도 그가 말을 꺼냈다. 이번 헤어짐은 진짜겠거니 하다가도, 그가 언제든 돌아올 것 같다는 이상한 확신때문에 헤어진 게 아니라 잠시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마지막 즈음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의 무성의한 태도나 눈빛을 생각하면 다시 아니야. 이번엔 진짜다. 싶고.


이번에는 이별을 만끽하기로 했는데, 쉽지 않다. 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흰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길래. 슬프면 슬퍼하고 보고싶으면 그리워하면서 감정이 흐르는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건만, 이 사랑이 정말 끝인가? 이제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없는 건가? 에 생각이 이르면 아직도 가슴이 무거운 추를 단 것처럼 철렁 내려앉는다. 우리는 왜 그렇게 쉽게 평생을 말했을까? 


헤어지기 전날 그에게 보고싶으니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었다. 알았다고 말한 그는 두 시간 동안 연락이 없다가 사진은? 묻는 나에게 무슨 사진? 하고 되물었었다. "보고싶으니까 사진 보내달라고~" "아, 맞다.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 또 연락 두절. 그 날 그는 끝내 나에게 사진을 보내지 않았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고, 우리는 별다른 약속이 없어도 토요일에는 항상 데이트를 했다. 토요일을 며칠 앞두고 그가 갑자기 약속이 생겼다길래 나는 혼자서 우쿨렐레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한 시간 동안 우쿨렐레를 뜯고 노래를 부르며 열심히 즐거운 척 했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다. 우쿨렐레 선율은 너무 해맑았고, 토요일 연남동은 연인으로 북적거렸다. 갑자기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그깟 사진이 뭐라고. 그깟 사진이....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눈물을 주룩주룩 쏟았다.



 밤이 깊었을 때 '나 먼저 잘게' 라고 썼다가 '사랑해'를 붙였다. '나도 사랑해'라는 말이 듣고싶어서였다. 먼저 잔다고 했지만 한시간 후 '사랑해' 라는 답이 온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잠이 들었다. 그 즈음 밤마다 그런 짓을 반복했다. 그깟 사랑해가 뭐라고. 어차피 공허했을텐데. 사진이고, 사랑해고... 그깟 것들이 다 뭐라고...


이별 5일차. 퇴근길 내내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를 곱씹으며 진짜 이별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다. 주문처럼 외우고 또 외웠다.


 그러다 '아무나 사귀어서 상처주고 헤어지고 싶다'는 못된 생각을 했다. 나도 나를 가슴아프게 원하는 사람에게 공허하게 사랑해라고 지껄여보고 싶다고. 한 번쯤은 그렇게 이기적인 연애를 해도 되지 않겠냐고. 


이별 5일차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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