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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금 Aug 30. 2019

내가 잘못한 게 있긴 있더라

이별로그 : 6일차


내가 뭘 잘못했을까. 이번에는 내가 뭘 잘못해서 망한 걸까?


이별이 찾아올 때마다 나를괴롭히는 건 그리움만큼 큰 자책감이었다. 일요일 이별 직후에 느낀 건 피로, 3~4일차에는 공허와 무기력. 그리고 6일째. 나는 자책의 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 자책은 나를 커다란 파도처럼 집어 삼켰다.


오늘 회사에서 거울을 보다가 문득 옷을 걷고 맨 배를 봤다. 그런데 갑자기 둥근 모양의 내 배꼽이 몹시 거슬렸다.


 내 배꼽은 연예인처럼 뾰족하고 길쭉한 모양이 아니라 둥근 일자형이다. 이제까지 신경도 안 쓰고 살았던 배꼽이 눈에 들어오며, '이것 때문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처구니 없고 웃기는 생각이었지만, 이 이후 온갖 검색창에 '배꼽 성형'을 검색하며 무려 한 시간을 보냈다. 배꼽 때문일지도 몰라. 배꼽이 좀 웃기게 생겼잖아.


 아니면 몇개월 전 아무생각없이 말한 사내 인간관계 이야기 때문인가. 내가 사람들이랑 잘 못 지내는 인간이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늘 내가 밝지 않다고 했었는데 내 성격이 밝아지면 다시 내게 반하지 않을까. 분위기가 어두워서 그런 건 아닐까. 혹은...


그는 왜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정말 배꼽 때문인가? 


오늘 하루종일 이런 이상하고 슬픈 생각에 시달렸다. 그럴리가 없다는 건 나도 알았다. 나는 그냥 사랑이 끝났다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배꼽이라도 탓하고 싶었지만, 우리가 헤어진 건 그냥 그의 마음이 식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식은 건 빈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을 채울 독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기 때문에. 나는 왜 빈 독이 널려있는데도 그 독만을 계속 원하는가. 그 독에 무슨 특별한 게 있길래...



퇴근 길에 동료에게 이별의 소식을 전했다. 결혼 2년차인 S씨는 생활력이 엄청 강한 사람인데, 내게 '결혼하고 싶으면 지금 당장 신용카드를 없애라'라고 충고한 적 있는 사람이다.


 S씨가 나의 이별 이야기를 듣더니, 진지한 얼굴로 사금씨가 지금 당장 할 일이 뭔 지 알아? 했다. 뭔데요? 물었더니,


"자기를 위해서 돈 쓰는 거. 이번 달 적금 넣지 말고 사고 싶은 거 다 사. 궁상맞은거 말고 좋은거, 이쁜거 사. 향기나는 거, 따뜻한 거 부드러운 거 그런거 있잖어. 뭔지 알지? 무조건 한 달은 친구, 가족, 썸남 다 필요없고 사금씨를 위해서만 써야돼. 할 수 있지?"


향기나는거, 따뜻한 거, 부드러운 거. 갑자기 코끝이 찡했다. 그래. 나에게 잘못이 있다면 기회가 될 때마다 향기나는 거, 따뜻한 거, 부드러운 거를 모조리 그에게 양보한 것이다. 떠날 사람에게 온 마음을 다 주며 놓지 못한 것이다. 내 잘못은 그것 뿐이었다. 배꼽이 못생겨서도, 인간관계가 나빠서도 아니었다.


애정은 퐁퐁 솟아났을 때처럼 사라질 때도 이유가 없더라.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인정하는 수 밖에.


이별 6일차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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