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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실 Oct 02. 2024

정규직 다섯 끼 - 나에게도 직속 후배가 생기다

멘토가 되어 멘티를 맞이하다

회사에 입사한 지 1년이 다 되어 가던 어느 날, 팀장이 나를 따로 불렀다. 팀장은 우리 팀에 새로운 직원이 들어올 거란 얘기로 서두를 던졌다. 이미 알고 있던 소식이었기에 고개만 끄덕이며 묵묵히 듣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문장이 뒤따랐다. "선생님이 멘토가 될 거예요." 

어느 회사에서는 이제 갓 1년을 넘긴 직원도 신입으로 대접받지만 우리 팀은 사정이 달랐다. 조직 개편으로 인해 새로 생긴 팀인 데다 얼마 안 있어 인사이동까지 있던 바람에 팀장 바로 밑 선임이 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멘토가 되고 말고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팀장은 이미 마음을 굳혔고 나 역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과연 어떤 사람이 들어올까?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나의 멘티를 기다렸다. 보통 정규직 자리에는 경력자가 들어오지만 계약직 자리에는 사회 초년생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나의 멘티는 1년 계약직이었으며 주워들은 정보에 의하면 나이가 어리고 회사 경험은 없다고 했다. MZ세대 중 가까스로 Z에 걸친 덕분에 '요즘 애들'이라 불리는 부류에 속하기는 하지만 나보다 더 어린 '요즘 애들'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했다. 신입직원의 첫 출근일이 가까워 올수록 미지의 신입직원에 대한 근거 없는 상상이 점점 뚜렷해졌다.


 



미지의 신입직원과 일주일을 같이 일하면서 그동안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의 멘티는 성실하고 적극적이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자기가 담당한 사업을 공부하고 탐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주저하지 않고 손길을 내밀었다. 내 일만 하기도 바쁜 회사에서 다른 사람의 일까지 도와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데 멘티는 보기 드문 이타적인 사람이었다.


'직장생활 7년'이라는 경력은 입사원서를 쓸 때는 분명 도움이 되었지만 정작 직장생활에서는 나를 나태하거나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 일들'이 사실은 '그렇게도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을 멘티 덕분에 다시금 깨달았다.


내가 이 회사에 입사했던 1년 전처럼 멘티 또한 수습일지를 작성해서 일주일마다 내게 제출했다. 내가 누군가의 업무를 검사하고 조언하는 위치가 되다니 부담스럽기도 하고 오글거리기도 했다. 수습일지에는 의무적으로 코멘트도 달아야 했는데 매주 다른 멘트를 생각해 내느라 창의력을 쥐어짜야 했다.




멘티의 등장으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점심시간이었다. 친하게 지냈던 직원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면서 다시 혼밥으로 돌아왔었는데 종종 멘티와 점심식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멘티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됐는데 바로 채소를 편식한다는 것이었다. 멘티와 두 번째로 같이 점심식사를 하던 날, 메인 요리인 국수에 미역줄기무침이 곁들여 나왔다. 내가 땅콩 소스에 버무린 미역줄기에 감탄하는 동안 멘티는 미역줄기가 들어 있는 그릇에 젓가락 한 번 대질 않았다. 이후로도 멘티의 편식은 다양한 메뉴에서 목격되었다.


나 역시 편식이 심했던 사람으로서 멘티를 이해했다. 멘티가 은근하게 받고 있는 편식 스트레스도 내 눈에는 보였다. 나는 그런 멘티에게 나의 편식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실 지금도 편식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는 것까지.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어느 순간 입맛이 확 바뀌는 날이 오더라는 얘기도 들려줬다. 예전에는 왜 맛없는 재료가 꼭 들어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언제부턴가 왜 이 음식에 양배추가 들어가야 하는지 왜 당근이 필요한지를 깨닫는 날이 오더라는 경험담도. 그러니 누가 편식에 대해 한 소리 하면 이렇게 답하라고 했다, "아직 때가 아닌가 보죠."





나의 멘티 이후로도 새로운 직원이 반년 간격으로 들어왔다. 다행히도 우리 팀은 팀원 운이 좋았다. 반년 후에 들어온 인턴은 나의 과거를 반성하게 할 정도로 태도가 좋았다. 스스로에게는 '내가 인턴이었을 때도 이렇게 적극적이었던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인턴에게는 칭찬을 건넸다. 신입직원으로만 꾸려진 우리 팀이 큰 문제없이 잘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다들 일머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력도 경험도 전무한 신입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일머리 하나로 버텨 나갔다.


그렇다면 과연 일머리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일머리란 일에 대한 개념이 잡혀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멀티탭에 비유해 보자. 회의실에서 노트북을 모니터에 연결하려고 하는데 선이 짧아서 닿질 않는 상황이다. 이때 그 상황을 보고 있는 다른 직원이 할 수 있는 '일머리 있는' 행동은?

1. "멀티탭을 가져다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2. 멀티탭은 다른 사람이 가져왔지만 직접 적합한 위치를 찾아 꽂는다.

3. 다른 사람이 멀티탭을 꽂는 걸 보고 선을 잡아주는 등 보조해 준다.

정답은 1, 2, 3번 전부다. 결국, 그냥 가만히 있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팀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팀장과 나 단둘만 일찍 출근했던 날이었다. 그런 날이 자주 있었지만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절대 먼저 말을 붙이지 않고 각자 업무에 집중하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갑자기 팀장이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나의 멘티가 팀장에게 상담을 요청하더니 회사를 관두겠다고 했단다. 팀장 앞에서는 당황한 척했지만 사실 나는 눈치채고 있었다. 요즘 들어 부쩍 멘티의 표정이 안 좋았고 힘들어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그날 오후 나는 멘티를 휴게실로 불렀다. 팀장에게 들었다는 말을 솔직하게 하면서 이 면담은 자발적으로 하는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멘티는 사실 아직 고민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직장 멘토가 아니었다. 3번의 이직을 경험한 이직 선배로서 직장을 관뒀을 때와 남았을 때의 장단점을 현실적으로 설명해 줬다. 그때 해줬던 말 중 하나가 멘티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관둔다고 마음먹으면 갑자기 회사가 애틋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은 놓치는 것에 대한 미련일 뿐 진정한 애정은 아니다. 그런 생각에 기울지 말고 그 너머를 봐라. 관둔다는 말을 철회했을 때 내가 더 버틸 수 있을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라."




나와의 면담이 결정적이었다는 얘기가 빈말인지 진심이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멘티는 퇴사 의사를 철회하고 계속 다녔다. 어느덧 나의 멘티가 입사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새로운 계약직 직원이 들어왔고 이번에는 나의 멘티가 새로운 멘토가 되었다. 회사에도 업무에도 완벽하게 적응해서 척척 해내는 멘티를 보고 있으면 나의 계약직 시절이 떠올랐다. 회사와 업무에 적응할 무렵 떠나야 했던 그때가, 그리고 그때 느꼈던 감정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멘티가 계약을 연장한 날 내게 말했다, 계약을 연장했지만 고용을 종료하는 것 같았다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연장 서류에 서명을 했지만 연장 서류에는 고용 종료일도 적혀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정규직이 되어 계약직을 바라보게 되었다. 업무가 한창 진행 중인데 계약이 종료되면 계약직은 떠나야 한다. 그렇다면 남은 업무는 정규직 몫이다. 하지만 이러한 실리적인 부분보다도 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이별 자체다. 팀에 계약직이 들어오는 것은 마치 헤어질 날을 받아놓고 하는 계약 연애와 같아서 결국 남는 것은 허무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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