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혼자 먹고 싶어요
간혹 혼자서는 밥을 못 먹거나 혼자 밥 먹는 사람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제 혼밥은 문화를 넘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급식을 먹던 학창 시절만 해도 혼자서 밥을 먹는 것만은 피하기 위해 새 학년 첫날부터 분주하게 친구를 물색해야 했다. 그러나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경우에 따라 혼밥을 할 수도 있으며 그게 외로움의 표시나 따돌림의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직장 분위기에 따라 혼밥을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밥을 혼자 먹는 것이 무슨 큰일인 것처럼 왜 혼자 먹냐고 꼬치꼬치 캐묻거나 다른 무리에 끼워주려고도 한다. 나 역시 혼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회사에도 다녀봤고, 반대로 혼밥이 너무 당연하고 전 직원의 절반 이상이 혼밥 하는 회사에도 다녀봤다. 양극단의 분위기를 모두 경험한 결과 깨달은 바는 '가끔은 혼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다니던 회사 건물은 원래도 창문이 작았다. 게다가 나는 어쩌다 보니 사무실 자리 배치 운까지 따라주지 않아서 정면에 흰 벽만 보이는 자리에서 일했다. 그나마 내 뒤통수는 중형 액자 사이즈만 한 창문 3개를 마주 보고 있었다. 3개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러 그루의 나무가 뒤엉킨 모습이었다. 그 나무에 꽃이 핀 후 진 낙엽이 바람에 흔들려 떨어지는 모습만이 사무실에서 계절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장치였다.
통창이 있는 식당이나 카페에 집착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마치 <마지막 잎새>처럼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 사무실 창밖 풍경은 너무 답답했기에 기회가 닿을 때마다 밖이 시원하게 보이는 통창 가게를 찾아 나섰다. 오로지 통창으로 밖을 바라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점심을 생략하고 바로 카페로 가기도 했다. 이도저도 안 될 때는 밥을 빨리 먹고 회사 주변을 산책했다. 바깥을 보고 싶다는, 나의 개인적인 성취를 점심 메이트에게 강요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럴 때면 혼밥이 필요했다.
회사 근처에 자주 가던 샐러드 가게와 카페가 있었다. 두 곳의 공통점은 햇볕이 잘 드는 통창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샐러드 카페는 회사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편이었는데도 걸음을 재촉해서까지 갈 정도였다. 메뉴판에 칼로리까지 적나라하게 적혀 있어서 건강식을 먹는다는 뿌듯함마저 느낄 수 있었는데 나는 늘 고기가 들어간, 적당한 칼로리의 메뉴를 선택했다. 가게가 넓어서 늘 자리는 여유 있는 편이었지만 내가 선택한 자리는 창밖과 마주 보는 바(Bar) 석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특별하지는 않았다. 맞은편 건물과 그 주위를 둘러싼 화단 정도. 하지만 화단의 나무와 관목에 반사되는 햇빛이, 건물 그림자와 경계를 이루는 양지바른 곳만도 너무 소중했다. 사무실의 작은 창문이 계절의 한컷을 보여주는 사진이라면 통창은 계절 전체를 보여주는 필름이었다. 통창 너머를 바라볼 때마다 샐러드를 너무 빨리 먹지 않으려 애썼다. 샐러드를 다 먹으면 가게에 더 앉아있을 명분이 사라지니까.
요즘 같이 날씨가 좋은 가을이면 이렇게 좋은 하늘과 바람을 등지고 사무실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괴롭다. 출근하는 아침은 너무 짧고 퇴근하고 나면 금방 저버리는 해는 너무 아쉽다. 그래서 온전히 날씨를 즐길 수 있는 점심시간이 더욱 소중하다.
토요일 아침이면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하늘을 체크한다, 제발 오늘도 어제 같이 청명하기를 바라면서. 짙푸른 하늘이 햇빛을 내리쬐는 것이 확인되면 침대를 박차고 일어난다. 평일에 못 누린 날씨를 즐기기 위해 일단 집을 나선다. 그렇게 찾는 곳이 결국 카페나 하염없이 걷는 도로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점심시간이라는 제한 없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