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까지 30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내 식습관은 규칙적이지 않았다. 아침 8시까지 학교를 가야 하는 고등학교에서 벗어나 등교시간이 자유로운 대학교에 들어가자 아침식사를 거르는 날이 많아졌다. 점심을 늦게 먹거나 아르바이트 등으로 집에 늦게 들어올 때면 저녁식사를 생략하기도 했다. 들쭉날쭉한 식습관이었지만 꼬박꼬박 거르지 않은 식사는 세끼 중 점심식사가 유일했다. 시간이 많지 않더라도, 때를 좀 놓치더라도, 점심식사만은 꼭 챙겨 먹었다.
하루의 중간에 먹는 밥, 점심식사. 점심식사는 오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힘이자 오후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직장인이 되면서 점심식사는 더욱 중요해졌다. 근로계약서상 점심시간은 법적으로 인정받는 휴게시간이다. 이로 인해 점심식사는 '밥'이라는 의미에 '휴식'이라는 개념까지 갖게 되었다. 한 시간 안팎의 점심시간은 직장인에게 긴 근로시간 중 오아시스와도 같다.
소중한 점심식사지만 가끔은 점심식사에 돈을 써야 하는 것이 아까울 때도 있다. 물가가 높은 지역에 위치한 직장을 다닐 때는 '내가 일하러 나와서 점심식사에 이만큼의 돈까지 써야 해?'라는 마음에 억울했다. 직장을 다니니까 점심식사를 사 먹을 수밖에 없는 것뿐인데 2만 원씩이나 써야 하다니. '점심식사 후 커피'를 매일 같이 즐기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그 돈을 감당하는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일하러 나왔는데 먹고 싶은 거 먹어야지!' 혹은 '어차피 먹는 점심인데 맛있는 거 먹어야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날은 점심시간을 회사 주변 맛집 탐방으로 보냈다. 맛있는 점심식사에 쓰는 돈은 아깝지 않았고 오히려 돈 버는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맛집으로 가는 길에 또 다른 맛집을 발견할 때면 내일 점심식사 장소를 미리 발견했다는 기쁨에 출근이 기다려지는 기이한 현상까지 겪었다.
직장인 8년 차가 될 때까지 약 2,000번의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운이 좋아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면 앞으로 8,000번이 넘는 점심식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의 회사 생활은 10,000번의 점심식사로 이루어진다. 남은 8,000번을 채워가는 동안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과 어떤 음식들을 먹게 될까? 그렇게 10,000번이 채워져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볼 때까지 나의 점심식사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