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실 Feb 11. 2022

점심인데 피자를 먹어요?

삼시세끼 피자만 먹어도 좋다

나의 피자 사랑은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하다. '뭐 먹을래?'라는 질문에 '나는 피자!'라고 우렁차게 대답한 적이 수차례며, '오늘은 피자 먹을까?'라는 말에 단 한 번도 거절을 한 적이 없고, 축하할 일이 있거나 특별한 날에는 무조건 피자부터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에서 피자 애호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냈을 때 동료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점심인데 피자를 먹어요?


나는 적잖이 당황해서 왜 먹지 못하는지를 물었다. 동료의 질문 의도는 이랬다, 기름진 피자를 점심에 먹으면 속이 부대끼지 않냐는 것이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피자를 먹고 속이 불편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순수한 표정으로 내가 피자와 얼마나 궁합이 잘 맞는지를 말해줬다. 내가 점심에 피자를 자주 못 먹는 이유는 배가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라 돈이 부담스러워서라고.




피자가 만들어지는 시간은 평균 15분이다. 넓은 반죽을 도화지 삼아 치즈로 밑그림을 그리고 토핑으로 색을 입힌다. 물감을 말리듯 오븐 속에 들어간 피자는 오히려 윤기가 흐르고 촉촉한 채로 완성된다. 피자에 대한 유난스러운 애정은 피자의 종류에 상관없이 적용된다. 어떤 도우를 쓰든 어떤 치즈를 뿌리든 어떤 토핑을 올리든 상관없이 피자라면 좋아하지만 그런 내게도 조금의 선호도는 존재한다.


화덕피자 같이 도우가 얇은 피자보다는 도우가 두꺼운 아메리칸 피자 스타일을 더 좋아한다. 바르셀로나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도 피자에 대한 열망은 꺼지지 않았는데 죄다 얇은 도우의 피자만 팔고 있었다. 어쩌다 도미노 피자 가게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신났던지. 젤라토는 많은데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없고, 얇은 도우는 많은데 두툼한 아메리칸 피자는 없는 것이 바르셀로나 감성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사실 '피자를 좋아한다'는 것의 의미는 꽤 원초적이다. 화려한 토핑도 쫀득한 도우도 필요하지 않다. 널따란 빵 위에 토마토소스와 치즈만 올려 먹어도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코스트코 피자는 크기만 크지 맛은 별로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갓 나온 코스트코 치즈 피자를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손이 데일 것 같이 뜨거운 것을 참고 녹아내리는 치즈를 도우 위로 얹어가며 먹으면 '이게 피자의 기본이지'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생각하는 피자의 본질은 토핑이 아니라 기본기와 조화에 있다. 빵, 소스, 치즈라는 기본 삼박자가 조화롭게 어울려 만들어낸 피자라는 완전체를 좋아한다. 화려한 재료를 다 쏟아부어도 기본기가 부족하거나 조화롭지 못하면 맛이 없다. 화려하게 튀는 옷보다는 밋밋해 보이더라도 스탠더드 한 옷을 좋아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좋지만 기본을 지키는 것을 우선시하는 나는 피자와 닮았다.




일 년 전쯤, 회사 주변에 이미 맛집으로 소문나 있는 프랜차이즈 피자 가게가 들어섰다. 모든 피자 메뉴를 1인용으로도 판매하는 곳이라 이제 나 혼자서도 꿋꿋하게 피자를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포장한 피자를 들고 회사 근처 공원으로 가서 식사가 가능하게끔 마련된 좌석과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피자 기름에 젖은 박스 바닥에 손을 대면 뜨거운 열기에 몸이 짜릿해진다. 희미하게 전해오는 피자 향기를 제치고 덮개를 열어 코로 쏙쏙 들어오는 진한 피자 향을 음미하며 식사를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근길 지하철의 철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